임진전쟁기 조선과 명의 전쟁인식과 군수정책
War awareness and Logistics policy of Joseon and Ming during the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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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병력, 무기체계, 군수체계 등이 총 망라되어 막대한 인적, 물적 비용이 동원되어 국가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다. 조선시대의 전쟁은 정권교체 수준이 아니라 왕국 내지 제국의 존망이 연결된 중대사였다. 이런 점에서 전통시대 전쟁에 대해 최대한 전쟁 이외의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고자 했다. 임진전쟁과 관련하여 명군의 참전은 조선의 파병요구와 명의 위기의식에 의해 참전하였으며 벽제전투이후 명과 일본의 강화협상이 진행되었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명의 참전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참전하는 시기의 명의 정세 및 군사환경은 어떠했는가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다. 또한 명의 참전이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황제국가로서 명의 위상과 조선에 대한 인식도 분석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명과의 국제관계는 명 중심 국제질서였으며, 황제국으로서 명과 주변국으로서 조선은 상호간에 국가관계의 의무와 권리가 존재했다. 황제국으로 명은 조선에 대해 조공을 요구할 권리와 함께 조선의 위기상황을 구원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그렇기에 명은 임진전쟁이 발발하자 황제국으로 조선을 구원한다는 명분과 함께 위기상황에 대응한다는 현실적인 목적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황제국으로 명은 주변국에 군대를 파견할 때, 황제국의 군대로서 권위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군수체계를 자국의 부담으로 인식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군을 파견하면서 각종 군량조달을 계획했다. 그러나 파병된 명군의 지휘관들은 현실적으로 조선에 군량조달의 의무를 전가하였으며, 조선은 명의 권위를 의식하여 이를 수용했다.
Abstract
War is crucial enough to determine the existence of a nation by including a large number of troops, weapons systems, and a munitions system, enormous human and material costs. The war in the Joseon Dynasty was not a level of regime change but a serious history connected with the survival of the kingdom or empire. In this regard, the traditional era tried to use diplomatic means other than war as much as possible. In relation to the Imjin War, the Ming troops participated in the war due to the dispatch of Joseon and the sense of crisis of the Ming. However, a basic review of the Ming is needed. There is little analysis of what the Ming was like and its military environment during the war. In addition, the Ming's participation in the crisis was not only analyzed, but the status of the Ming and its perception of Joseon as an emperor country were not analyzed. As Ming and neighboring countries in the Ming-centered international order, Joseon had obligations and rights of state relations. As an emperor, the Ming had the right to demand tribute to Joseon, as well as to save the crisis of Joseon. When the Imjin War broke out, the Ming entered the war with the real purpose of responding to the crisis with the justification of saving Joseon as the emperor. When the Ming sent troops to neighboring countries, the military recognized the various military systems as its burden to maintain its authority and status as the military of the emperor. Therefore, the Ming planned to provide various military supplies while dispatching troops. However, the commanders of the dispatched Ming troops actually handed over the duty of military procurement to Joseon, which was conscious of and accepted Ming's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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