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환의 노년과 죽음에 대하여
On the last years and death of Yi Bong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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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념재(雨念齋) 이봉환(李鳳煥, 1710~1770)은 서얼시인이다. 그는 174 7~1748년 무진통신사(戊辰通信使)의 서기(書記)로 일본에 다녀온 바 있고, 1760~1761년 경진동지사(庚辰冬至使)의 군관(軍官)으로 청나라 연경 (燕京)에 다녀왔다. 신분적 한계 때문에 조선에서 자신의 문예적 재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 못했던 이봉환은 이 사행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공적 필요를 위해 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현지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본고는 이봉환이 중국을 다녀온 1761년부터 세상을 떠난 1770년까지인 그의 노년의 삶과 그가 맞이한 죽음을 다루고 그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연행을 다녀온 그는 임오화변(壬午禍變)에 연루된 조재호, 조유진 등 지친 (至親)의 죽음을 목도하는 등 정치적 풍랑 속에서 부침(浮沈)하였다. 이런 가운데 차기 통신사 수행원으로서 자신의 벗인 남옥(南玉), 채희범(蔡希範) 등을 추천하는 일을 하였다. 만년에 가까워질수록 정치적 풍랑 속의 동요는 더욱 거세어졌으며 이 와중에 예전 통신사행 때의 일을 회상하는 일이 많았다. 이봉환은 자신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최익남(崔益男) 옥사(獄事)에휘말려 최후를 맞이한다. 대역죄(大逆罪)의 혐의를 받고 영조(英祖)에게 수사를 받는 도중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서얼로서 변변한 직책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두 차례 해외체험을 하여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허여해 준 인물이 영조였다는 점에서 이는 몹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last years of Yi Bong Hwan(李鳳煥, 1710~1770) and his death. He was a seoeol(庶孽), a concubinary son born to a literati family in Choson. Due to his natal status, he could make and keep close relations not only with other seoeols but also with beolyeol sadebu(閥閱士大夫), renowned literati families. He went to Japan as a member of Mujin-tongsinsa(戊辰通信使), Choson’s envoy to Japan in 1747~1748, and then to Beijing in Qing(淸) as a member of Kyungjin-dongjisa(庚辰冬至使), Choson’s envoy to China in 1760~1761. After dongjisa’s coming back to Choson, Yi Bong Hwan found himself in danger because some of his friends and patrons were in political trouble, especially about Im-o-huabyun(壬午禍變). Thus, Yi Bong Hwan’s late life was full of good memories of the experiences of the two envoys and sorrows about being old. Yi Bong Hwan himself was involved in a political incident and died during the investigation. This case happened under the leadership of King Yung-jo(英祖). And it was ironic that Yung-jo had Yi Bong hwan qualified as the 2 envoys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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