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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 정인보와 강화학파

Widang(爲堂) Jeong, in-bo(鄭寅普) and Kanghwa(江華)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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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1950)는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던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에서 「조선(朝鮮) 양명학파(陽明學派)」라는 장(章)을 설정하고, 한국의 양명학파를 개괄하였다. 위당은 조선에는 학파다운 학파가 없었고, 오로지 주자학을 존숭하는 속류 학자밖에 없었다는 점을 개탄하고, 그러면서도 숨은 학맥으로서 조선 양명학파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위당은 이어서, 조선의 양명학파를 세 부류로 나누어서 그 계보를 상세하게 밝혔다. 조선의 양명학파 가운데 최대의 학맥을 이루었다고 할 강화학파에 대해서는 그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그 계보의 실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양명학연론』에서 모두 적시하여 두었다. 그것은 위당이 곧 강화학파의 적전(嫡傳)이었기 때문이다. 강화학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공부하는 후학으로는 기필(起筆)의 단서를 늘 『양명학연론』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수다한 논설의 끝에 그 결론이 『양명학연론』의 일언일구로 귀착하게 만든다. 위당은 강화학파 여러 학자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하는데 공을 기울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은 그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심대윤(沈大允)의 『복리전서(福利全書)』(고려대도서관 소장 필사본)에 후기를 남겼다. ② 신작(申綽)의 『석천유고(石泉遺稿)』(서울대 규장각 소장 필사본)에 후기를 남겼다. ③ 조선총독부가 신작(申綽)의 『시차고(詩次故)』를 석인할 때 위당의 자료를 이용하였다. ④ 「『주영편』 뒤에 쓰다(書晝永編後)」를 남겼다. ⑤ 유희(柳僖)의 『문통(文通)』에 대한 해제를 남겼다. 위당의 학문사유 방법은 첫째, 경세적 학문과 객관분석법을 접목시킨 점, 둘째, 구시본진(求是本眞)의 학문적 태도를 견지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학문사유 방법은 강화학파의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문학에서 진실정감(眞實情感)을 중시하고 스스로 문학창작을 통해 실천한 점도 강화학파의 문학적 경향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위당은 강화학파의 틀에 머물지 않고, 조선후기의 지성사에서 주체적 학문전통으로 자리 잡은 협의의 실학 계보와 강화학파의 사유 전통을 종합하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위당의 학문은 과거 암흑기에 명멸한 민족주의 학문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학문의 방향을 제시한 미래의 학문이기도 하다.

Abstract

Widang(爲堂) Jeong, In-bo(鄭寅普, 1893~1950) set chapter of 「Choson(朝鮮)'s Yangming school(陽明學派)」 in 『The exposition of Yangming studies(陽明學演論)』 that serialized 『Dong-A Ilbo』 in 1933, and generalized Korean Yangming school(陽明學派). Widang(爲堂) deplored that no school worthy of school was in Choson(朝鮮), and was the only scholar who reverence Chuja studies(朱子學), then spoke paradoxically that as hidden scholastic mantle Choson(朝鮮)'s Yangming school(陽明學派) existed. Then Widang(爲堂) divided into three classes about Choson(朝鮮)'s Yangming school(陽明學派), said the genealogy detailedly. Nothing but unused name about Kanghwa(江華) school, about the accomplished maximum scholastic mantle among them, already noted down real facts of the genealogy in 『The exposition of Yangming studies(陽明學演論)』. It is because Widang(爲堂) was Jeokjeon(嫡傳) of Kanghwa(江華) school. As for scholar who collect data about Kanghwa(江華) school, can only just look for first step in 『The exposition of Yangming studies(陽明學演論)』, conclusion of much discourse makes to revert in one joint and writing of 『The exposition of Yangming studies(陽明學演論)』. Widang(爲堂) was bent on pigeonholes and preserves about the Kanghwa(江華) school several scholars' data. Following truths are the example. ① Left a postscript in Sim, dae-yun(沈大允)'s 『Boklee(福利) complete book』(Korea University library's possession manuscript). ② Left a postscript in Shin, jak(申綽)'s 『Seokcheon(石泉) posthumous works』(Seoul National University Gyujanggak's possession manuscript). ③ When Choson-government(朝鮮總督府) printed the 『Sichago(詩次故)』 by stone seal, used Widang(爲堂)'s data. ⑤ Left a bibliographical explanation of Ryu, hui(柳僖)'s 『Muntong(文通)』. Widang(爲堂)'s method of the learning thought is same as following. First, grafting together governing learning and objectivity analysis law, second, firmly maintaining a learning attitude of Gusibonjin(求是本眞). These method of the learning thought can say that it inherit and develop the Kanghwa(江華) school. Also, taking a serious view truth feeling(眞實情感) in literature, and practicing through oneself literature production can say that also inherit and develop the literary tendency of Kanghwa(江華) school. By the way, Widang(爲堂) did not stay on Kanghwa(江華) school's frame, and synthesized the narrow meaning's practical science genealogy and the tradition of the learning thought of Kanghwa(江華) school that was seated from intelligence history as subjective learning tradition. So, Widang(爲堂)'s learning does not stay as nationalism learning that disappeared in past dark ages. Justly, it is future learning as presenting a literary direction that we must seek 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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