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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堂 鄭寅普의 實學인식과 학문주체론 - 「陽明學演論」을 중심으로 -

The Academic Identity and the Recognition of Practical Studies by Widang Cheong In-Bo (爲堂 鄭寅普): Focusing on Yangmyeonghak Yeonron (陽明學演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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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위당은 1929~1936년에 「조선고전해제」(이하 「해제」)․「양명학연론」(이하 「연론」)과 같은 조선근세학술의 정리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과 같은 조선역사연구를 수행했다. 「연론」은 두 과제의 접점에 해당하는 시기에 연재되었다. 선행연구는 「연론」이 근대학문의 대안으로서 양명학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학․조선학이라는 위당의 종지, 조선근세학술정리 기간과 「연론」의 연재기간, 1930년대 지식인들에게 시의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연론」은 전통학문의 비판적 성찰․정리를 통해 그 유산을 당대 사회에 선택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이며, 위당이 조선학운동을 제창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서술로 보인다. 본고는 위당의 학적배경이 전통학문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연론」의 의도와 의의를 허학 대 ‘실학’의 구도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전통지식인에게 ‘실학’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허실론을 중심으로 「연론」을 분석하는 것이 「연론」의 이해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연론」은 주자학자와 당대학자의 학문이 주체성 없는 외물탐구에 빠진 허학으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주체라는 기준 속에서 외물탐구가 이루어질 때, 주체에게 실효가 있는 학문이 된다고 보았다. 위당은 이러한 학문을 실학으로 인식했고, 「연론」은 ‘실학’의 사례 중 하나로서 양명학을 설명하는 한편, 독자적인 근세조선학을 설명하고자 했다. 위당이 조선학운동을 제창하기에 앞서 「연론」을 연재한 것은 근세조선학 계보의 보충문제와 학문적 주체성에 대한 강조를 위한 의도 때문이었다. 「해제」에서 위당은 근세조선학이 3가지의 뿌리를 지녔다고 천명했지만, 양명학적 흐름은 보충이 필요하였다. 위당은 양명학의 계보화를 통해 근세조선학의 계보를 구체화하고, 기원을 상향시켰다. 아울러 중국양명학과 조선양명학의 등가성을 설명하고, 동아시아 양명학에서 하곡학문의 주체성․독자성을 밝혀, 근세조선학의 특징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계곡․담헌을 양명학자로 편입시켜 근세조선학의 학문적 주체성을 강조하고, 시대적 과제에 부응한 ‘실학’적 학풍이 근세조선에 내재했음을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위당은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주체적이고 조선적인 서구학문을 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겠다.

Abstract

Widang (爲堂), 1893~1950, undertook the organization of late Chosun studies and Korean history research from 1929 to 1936. Yangmyeonghak Yeonron (陽明學演論) (henceforth "Yeonron" (演論)) was serialized in the period between the two projects. Yeonron refers to a trial in which possessions are inherited selectively in a society through critical reflection and the organization of traditional study. It is considered as a transitional description before the proclamation of Chosunhak (朝鮮學). Widang criticized scholars in the 1930s as focusing on an impractical study (虛學) without identity. He explained Yeonron as one example of a practical study (實學) and tried to explain the concept of independent studies in the late Chosun dynasty (近世朝鮮學). Widang realized the creation of a genealogy of studies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and he changed the origin of these studies from how it had been recognized in earlier times. In addition, he showed academic equivalence between Yangming's studies in China (中國陽明學) and the Chosun (朝鮮陽明學). He emphasized the academic identity of Chosunhak, and he explained practical studies such as the academic traditions that existed in Chosunhak. Through Yeonron, Widang required scholars in the 1930s to undertake independent study and to closely examine the Chosun via western study meth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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