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논문] 식민지 시대 鄕歌 解讀史의 재조명
Rethinking the Interpretation of Hyang-ga in th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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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간 정형화된 향가 해석사의 핵심 연구자들, ‘金澤庄三郞(1918) → 鮎貝房之進(1923) → 小倉進平(1929) → 梁柱東’을 보다 느슨하게 해체한 후, 그 틈에 그간 해석사적 조명이 소홀했던 연구자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기존에 있었던 그들의 업적을 부정하는 차원이 아닌, 이들과 同時代를 살면서 향가 해독에 학구적 열정을 보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연구자들을 발굴해 다시 조명해보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金澤庄三郞 대신 안확을 향가 연구사의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보았고, 권덕규ㆍ신채호에겐 『악학궤범』에 실린 고려가요 <처용가>의 노랫말을 향가 <처용가>에 결부시킨 공을 돌려줄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또 1930년 중반에 신문지, 학술지 등을 통하여 자신의 의견들을 학술적으로 개진하였던 신진학자들 - 유창선ㆍ전몽규ㆍ신태현 - 의 목소리 또한 우리가 경청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학설들은 엄정한 학술적 체계를 통하여 개진되고 있으며, 내용 또한 우수하여 소창진평과 양주동의 약한 부분도 틈틈이 잘 채우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양주동의 대학 제자이자, 일본 立敎大學에서 공부한 유창선의 경우, 소창진평과 양주동의 방법론을 잘 숙지한 가운데, 독특한 학설들을 개진한 공이 있고, 마에다 등과 인연이 있었던 전몽규는 탄탄하게 수집한 고어 어휘력을 바탕으로 향가 어휘의 고유어를 잘 포착한 장점이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신태현은 한역시를 소창진평보다 더 꼼꼼이 활용하면서 향가 해독사의 한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식민지 시대 우리의 향가 해독사는 20년대의 경우, 문학사 편입과 중요 자료 확충의 측면에 국학자 출신인 안확, 권덕규, 신채호의 공이 적지 않았으며, 30년대의 경우 소창진평의 극복에 양주동만 고군분투한 것이 아니라, 유창선ㆍ전몽수ㆍ신태현 등도 자신의 장점을 십분발휘하며 의미 있는 족적을 해독사에 남긴 것으로 평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Abstract
This article introduces researchers who have been overlooked in the interpretation of hyang-ga, despite their scholarly passion and achievements during the same period as the core researchers of the established and formalized hyang-ga interpretation, namely Kinzō Kanazawa (1918), Fusayoshi Ayukai (1923), Shimpachi Ogura (1929), and Joo-dong Yang. This is not an attempt to deny the latter’s achievements, but rather to shed light on the neglected researchers who shared their passion. Thus, placing An Hwak, Kwon Deok-kyu, and Shin Chae-ho at the forefront of hyang-ga research is necessary. Particularly, this article proposes to credit the efforts of Kwon Deok-kyu and Shin Chae-ho in relating the lyrics of “Cheoyongga” to hyang-ga, which were included in the “Guide to Musicology.” Further, the voices of young scholars, such as Yoo Chang-seon, Jeon Mong-gyu, and Shin Tae-hyeon, who improved their arguments through academic journals and newspapers in the mid-1930s are emphasized. Their academic dissertations are being improved through strict academic systems, and their content is excellent, filling the gaps in So Chang-jinpyeong and Yangju-dong's research. Yoo Chang-seon, a former university student of Yangju-dong and a graduate of Rikkyo University in Japan, had grasped the methodology of So Chang-jinpyeong and Yangju-dong well while developing unique academic dissertations. Jeon Mong-gyu, who had connections with Maeda and others, had the advantage of capturing the native words in hyang-ga vocabulary based on his well-collected ancient vocabulary. Shin Tae-hyeon, who studied at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 is considered to have pioneered hyang-ga interpretation by utilizing Han Yeok's writings more thoroughly than So Chang-jinpyeong. Finally, during the colonial period, not only scholars from national studies such as An Hwak, Kwon Deok-kyu, and Shin Chae-ho, but also young scholars such as Yoo Chang-seon, Jeon Mong-gyu, and Shin Tae-hyeon,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hyang-ga interpretation by incorporating literature and expanding important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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