森崎和江における欠如の深淵─「外地」日本語と植民地体験がもたらした副作用─
The Abyss of Privation for Kazue Morisaki Side Effects Generated by "Gaichi" Japanese Language and the Colonial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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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일본 식민주의의 상흔이라 할 수 있는 ‘외지’ 일본어를 포함한 식민지의 체험이 모리사키 가즈에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많은 선행연구가 그러한 것처럼 그녀의 표현활동 전체의 흐름에 대해 부감(俯瞰)하여 논하기보다는, 일본 귀국 직후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과거 조선에서의 식민지 체험이 준 영향에 대해, 특히 언어와 정서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고찰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 중 하나는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이 초래한 식민지 조선 속 피식민자에 대한 영향이 아니라, 식민지배국 측에 속해 있던 외지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과 그 작용 양상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비록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고 무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고는 하더라도 식민지배국 측에 속해 있던 모리사키가 조선에서 생활하며 익힌 일본어, 그리고 특수한 상황에서 체득하게 된 정서와 감성이 이후 일본과의 사이에서 어떤 마찰을 불러일으켰을까. 식민지 정책의 산물이며 역사적 희생자였다고 할 수 있는 인양자(引揚者) 즉, 모리사키와 같은 식민 2세들이 일본으로 귀환한 뒤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본의 식민주의가 이들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리사키에게 내재된 ‘결여(缺如)’ 의식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던 억압과 피억압의 이항 대립 구조가 만들어내는 공적 기억과는 구별되는 그녀의 개인사적 행보의 일단(一端)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 결여의 감각을 중심으로 다양한 언설과 시 등에 나타난 표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analyses the impact of the colonial experience on Kazue Morisaki through her discourse and expressive activities, including the "gaichi" Japanese language, which can be regarded as a scar of Japanese colonialism. Rather than taking a bird's-eye view of Morisaki's expressive activities as a whole, as has been done in previous studies, this paper attempts to examine the impact of her colonial experience, which became apparent immediately after her return to Japan, focusing on the issues of language and emotion. In addition, one of the aims of this thesis is to identify aspects of the effects of Japanese colonialist policies not on the colonized population in colonial Korea, but on the Japanese as colonizers. How did Morisaki's Japanese language that he acquired throughout his life in Korea, and the emotions and sensitivities he developed through all his experiences, came into conflict with Japan, even though he was a young and unconscious member of the colonial empire? In particular, I will focus on the sense of "privation" inherent in Morisaki, and attempt to analyze and discuss a snippet of her personal history distinct from the public memory woven by the dichotomous structure of oppressor and oppressed that certainly existed in the Korean peninsula at the time, by looking into her discourses, poems and other expressions, using the sense of "privation" as a 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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