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慈藏의 五臺山 開創과 中臺 寂滅寶宮

Foundation of Odaesan by Jajang and Jeogmyeolbogung of Jungdae

0

조회

0

다운로드

2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종교학

초록

慈藏과 관련된 중국자료와 한국자료 사이에는 여러 가지의 異見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견은 크게 자장의 ‘入唐목적과 年代’, 그리고 신라 귀국 후 ‘溟州지역에 갔느냐’와 ‘그 시기가 언제냐’에 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기존의 자료들을 보다 세밀하게 고찰하고, 閔漬의 『五臺山事蹟記』를 이용해서 보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통해서, 먼저 入唐목적에 관해서는 자장이 使臣과 동행하고 海路로 갔다는 점 등을 근거로 唐의 수도인 長安으로 먼저 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당나라 시기의 마지막에 여러 佛敎聖跡들을 순례할 때, 중국오대산을 참배한 것으로 확정하였다. 또 자장의 入唐연도인 636년 설과 638년 설의 두 가지 중 638년 설이 맞으며, 이 같은 왜곡은 ‘후대 한국오대산 불교의 성세’와 ‘중국과 고려의 대외관계 변화’에 의해서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다음으로 자장이 신라로 귀국해서 溟州지역을 방문했느냐에 대해서는, 그 결과로 오대산과 水多寺ㆍ淨岩寺 등의 유적이 존재하므로 사실로 판단했다. 다만 그 시기는 자장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는 ‘귀국직후’와 ‘晩年’에 의한 두 번이 아니라, 만년으로 단일화했다. 그리고 이유를 聖骨에서 眞骨로 권력이 변모하는 과정에서 밀려났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끝으로 자장에게서 시원을 두는 한국오대산 中臺 寂滅寶宮은, 頂骨과 佛腦를 모셨다는 점에서 최고의 보궁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여타의 보궁들과는 달리 천연적인 明堂地勢를 이용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본고에서는 이에 대한 보다 타당한 해법을 제시해 보았다.

Abstract

There are several different opinions between Korean and Chinesematerials on Jajang. The difference is mainly about ‘for what and whenJajang entered China’ and ‘whether he really went to Myeongju(溟州)’after he came back to Silla and ‘when, if he did.’ To solve theseproblems, this paper examines the existing materials more in detail andthe study is complemented with <Odaesan Sanjeoggi(五臺山事蹟記)>written by Minji(閔漬). Through this, it turned out that Jajang went first to Changan(長安)the capital of Tang Dynasty by ship along with an envoy. While hemade a pilgrimage to Buddhist sacred places in the last stage of Tangtraveling, he must have visited Odaesan in China. And the year whenJajang entered Tang has been insisted to be either 636 or 638, betweenwhich the latter is right. This kind of distortion seems to have beencaused by ‘the later prosperity of Korean Odaesan Buddhism’ and ‘thechange of international relation between China and Koryeo.’Next, in the problem whether Jajang really went to Myeongju(溟州) after he came back to Silla, it seems true because there exist thehistoric sites such as Odaesan, Sudasa(水多寺) and Jeongamsa(淨岩寺). But, in the problem of time when Jajang visited there, it was determinedas one time of his later days rather than two times of ‘right after hisreturning’ and ‘his later days.’ It’s because he was thought to have beenpushed out in the process that the power was shifted from the seonggol(聖骨) to the jingol(眞骨). Finally, Jeogmyeolbogung(寂滅寶宮) of Jungdae(中臺) in KoreanOdaesan which was originated by Jajang is peculiar in that it has beenconsidered as the highest bogung enshrining Buddha’s brain and headbone and that it is sited at the natural super fine landscape unlike otherbogungs. In this paper, more reasonable solutions for this have beensuggested.

참고문헌 (70)

  1. "四分律, T.22", ~
  2. "妙法蓮華經論優波提舍, T.26", ~
  3. "三國遺事, T.49", ~
  4. "續高僧傳, T.50", ~
  5. "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T.50", ~
  6. "大唐西域記, T.51", ~
  7. "法苑珠林, T.53", ~
  8. "衆經目錄, T.55", ~
  9. "歷代編年釋氏通鑑, T.76", ~
  10. "品高僧摘要, T.87", ~
  11. "東師列傳, 韓佛全10", ~
  12. "皇龍寺刹柱本紀", ~
  13. "檜巖寺無學王師妙嚴尊者塔碑文", ~
  14. "乾鳳寺事蹟", ~
  15. "六經後誌", ~
  16. "通度寺誌", ~
  17. 金富軾, "三國史記", ~
  18. 閔漬, "五臺山事跡記", ~
  19. 李重煥, "擇里志", ~
  20. 韓國學文獻硏究所, "通度寺誌" (1979), 亞細亞文化社
  21. 月精寺, "五臺山-月精寺ㆍ上院寺", 月精寺
  22. 朱南哲, "韓國建築史" (2006), 高麗大出版部
  23. 正覺, "印度와 네팔의 佛敎聖地" (2002), 佛光出版社
  24. 최완수,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1" (2002), 대원사
  25. 韓國佛敎硏究院, "月精寺(附)上院寺" (1995), 一志社
  26. 韓國佛敎硏究院, "通度寺" (1999), 一志社
  27. 한상길, "月精寺" (2009), 大韓佛敎振興院
  28. 다카다 오사무, "佛像의 誕生" (1994), 예경
  29. 벤자민 로울렌드, "印度美術史-굽타시대까지" (1999), 예경
  30. 샐리 하비 리킨스, "玄奘法師" (2010), 民音社
  31. 스와미 싸띠아난다 사라스와띠, "꾼달리니 딴뜨라" (2008), 한국요가출판사
  32. 아지트 무케르지, "쿤달리니" (1995), 東文選
  33. 中村元, "佛陀의 世界" (1990), 김영사
  34. 高田修, "佛像の起源" (1967), 岩波書店
  35. 山尾幸久, "古代の日朝關係" (1989), 塙書房
  36. 張高擧, "佛敎聖地法門寺" (2003), 三秦出版社
  37. 塚本啓祥, "法華經の成立と背景" (1983), 佼成出版社
  38. 高翊晋, "新羅密敎의 思想內容과 展開樣相, In 韓國密敎思想硏究" (1986), 韓國密敎思想硏究
  39. 金福順, "新羅 五臺山事跡의 形成, In 江原佛敎史 硏究" (1996), 小花
  40. 金相鉉, "三國遺事 慈藏 기록의 검토, In 天台宗 田雲德 總務院長 華甲紀念-佛敎學論叢" (1999), 天台佛敎文化硏究院
  41. 金英美, "慈藏의 佛國土思想, In 韓國史 市民講座(제10집)" (1992), 一潮閣
  42. 辛鍾遠, "慈藏과 중고시대 사회의 사상적 과제, In 新羅初期佛敎史硏究" (1992), 民族社
  43. 辛鍾遠, "慈藏의 佛敎思想에 대한 재검토, In 新羅初期佛敎史硏究" (1992), 民族社
  44. 月精寺聖寶博物館, "月精寺八角九層石塔의 재조명" (2000), 月精寺聖寶博物館
  45. 이선이, "佛腹藏의 의미와 造像經, In 法" (2008), 大韓佛敎曹溪宗 佛敎中央博物館
  46. 주보돈, "毗曇의 亂과 善德王代 政治運營, In 李基白先生古稀記念 韓國史學論叢上" (1994), 一朝閣
  47. 許興植, "高麗로 옮긴 印度의 등불" (1997), 一潮閣
  48. 許興植, "1306년 高麗國大藏移安記, In 高麗佛敎史硏究" (1986), 一潮閣
  49. 강호선, "고려말 나옹혜근 연구", 박사, 국사학, pp.2011
  50. 金鐸, "金剛山의 유래와 그 종교적 의미", 東洋古典硏究, 1 (1993)
  51. 金炯佑, "胡僧 指空硏究", 東國史學, 18 (1984)
  52. 남동신, "慈藏의 佛敎思想과 佛敎治國策", 韓國史硏究, (76) (1992)
  53. 南武熙, "三國遺事에 반영된 고려 국내 유통 「慈藏傳」의 복원과 그 의미", 韓國學論叢, (34) (2010)
  54. 南武熙, "『續高僧傳』 「慈藏傳」과 『三國遺事』 「慈藏定律」의 원전 내용 비교", 文學, 哲學, pp.2009, (19)[DOI]
  55. 盧在性(慧南), "澄觀의 五臺山 信仰", 中央增伽大學論文集, (8) (1999)
  56. 朴魯俊, "唐代 五臺山信仰과 不空三藏", 關東史學, (3) (1988)
  57. 朴魯俊, "唐代 五臺山信仰과 澄觀", 關東史學, (3) (1988)
  58. 朴魯俊, "五臺山信仰의 起源硏究-羅ㆍ唐 五臺山信仰의 比較論的 考察", 嶺東文化, (2) (1986)
  59. 박미선, "新羅 五臺山信仰의 成立時期", 한국사상사학, 28, pp.131~160 (2007), 한국사상사학회
  60. 신동하, "新羅 五臺山信仰의 구조", 人文科學硏究, (3) (1997)
  61. 辛鍾遠, "善德王知幾三事條의 몇 가지 문제",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 17 (1996)
  62. 辛鐘遠, "慈藏의 佛敎思想에 대한 再檢討-初期戒律의 意義", 韓國史硏究, (39) (1982)
  63. 염중섭, "髻珠에 관한 사상적 관점에서의 재조명", 종교연구, 61(61), pp.189~221 (2010), 한국종교학회
  64. 廉仲燮, "<善德王知幾三事> 중 第3事 고찰", 史學硏究, (90) (2008)
  65. 廉仲燮, ", "『五臺山事跡記』 「第1祖師傳記」의 수정인식 고찰-閔漬의 五臺山佛敎 인식", 國學硏究, 18 (2011)
  66. 염중섭, "慈藏 戒律思想의 한국불교적인 특징", 한국불교학, (65), pp.253~283 (2013), 한국불교학회
  67. 張志勳, "慈藏과 芬皇寺",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 (20) (1999)
  68. 許興植, "高麗에 남긴 鐵山 瓊의 行跡", 韓國學報, (39) (1985)
  69. 許興植, "佛腹藏의 背景과 造像經", 書誌學報, (10) (1993)
  70. 許興植, "指空의 遊歷과 定着", 伽山學報, (1) (1991)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