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성주와 성산동고분군의 역사적 의의
Historical significance of ancient Seongju and Seongsandong Ancient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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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문헌 사료에 나오는 고대 성주의 정치적인 위상을 검토하고 그 지역에 조영된 성산동고분군의 성격을 밝혀 신라 국가 내에서 성주가 차지하는 자율성과 통합성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고대 성주지역의 정치체는 사료상으로 벽진국, 성산가야, 일리촌 등이 나온다. 그 고분문화는 판석조 수혈식석곽묘, 성주양식토기 등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심지인 성산동고분군을 정점으로 수죽리․용각리고분군, 명천리고분군 등이 주변에 분포하며, 벽진국의 국읍 및 읍락의 중심지로 추정된다. 이 고분문화는 구미 황상동과 칠곡 복성동에서도 확인되어 벽진국이 성산가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리촌에는 거대 고분군이 없어 다른 방식의 존재양상을 보여준다. 일리촌은 신라, 대가야, 성산가야가 낙동강 중류역으로 진출하자고 할 경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였다. 일리촌은 신라가 낙동강을 건너 서안인 성주로 진출하고 대가야의 동진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였다. 벽진국의 읍락이었던 일리지역을 일리촌으로 파악하였지만 지역의 자율성이 유지되고 있었다. 신라는 村制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전에 기존 소국을 존치하여 지배하는 지역과 촌으로 편제한 지역으로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다. 옛 벽진국은 읍락의 상태로 기존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지역과 촌으로 편제된 일리촌이 공존하였다. 고대 성주는 신라로의 통합성과 벽진국(성산가야)의 자율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신라는 고대 성주지역을 영역으로 지배하기 보다는 대가야를 견제하는 변경으로 위치지우고 있다. 고대 성주지역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신라권에 속하면서도 ‘성산가야’로 오래도록 기억된 이유이다.
Abstract
This paper intended to elucidate the autonomy and integrity of Seongju in the Silla Dynasty by examining the political status of ancient Seongju in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and reveal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Seongsandong Ancient Tombs constructed in the area According to historical materials, the political bodies of the ancient Seongju include Byeokjinguk, Seongsan-gaya, ili-chon. Currently, the small country formed around Seongju-gun and Goryeong-gun Seongsan-myeon is presumed to be Beokjinguk, and it was called Seongsan-gaya as it spread its influence to Chilgok Yakmok and Gumi Indong. The tomb culture in this area had the same characteristics as the stone-plated stone lined tomb, and Seongju type pottery. ili-chon was a important place when Silla, Dai-gaya, Seongsan-gaya tried to advance to the middle stream of the Nakdonggang River. Silla identified the ili area as their village, but recognized the autonomy of operating the ferry. In ancient Seongju, the unity of Silla and the autonomy of Byeokjinguk(Seongsan-gaya) coexist. Silla used ancient Seongju area to check Dai-gaya, rather than dominate as a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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