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기 군사 운용체계의 변화와 황산벌전투
A Study on Changes in Military Operation System in Sabi Period of Baekje and Hwangsanbul Battle
0
조회
0
다운로드
1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 글은 백제 사비기 軍事 運用體系의 변화양상을 통해 황산벌전투의 배경을 검토한 것이다. 사비기 백제의 군사조직은 행정구역을 근간으로 하여 지방관인 方領·郡將이 군사지휘관적 성격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왕·의자왕대에 와서 신라 영역내 거점성 공략방식과 중앙군단 중심의 운용이 이루어지면서 군사력의 분산과 지역 방어체계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方·郡·城의 軍管區로서의 성격이 약화됨으로써 신라의 선제적이고 국지적인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신라의 경우 각 지역 군·성 등의 행정구역 주민을 징발, 편성하여 외부 적의 침략방어와 같은 국지전에 활용함으로써 중앙의 정예군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백제는 중앙군단 중심의 군사력 운용으로 정예군의 감소와 빈번한 戰役에 따른 국론분열과 사기저하, 그리고 방·군·성의 지방통치체제에 근거한 각 지역중심의 방어체계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660년 나·당군 침략시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하였는데, 신라군이 탄현방면으로 진격한 배경은 당시 백제-신라간 국경선의 변화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황산벌전투가 벌어진 연산지역은 신라와의 관계에서 군사적으로 후방에서 최전방이 되어 변경지대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신라 5만군이 백제의 감시를 피해 탄현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東方 지역의 대부분이 신라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라 5만군을 막는데 5천의 군사밖에 동원하지 못한 사실은 당시 백제 중앙 중심의 군사력 운용과 대외방어, 군사 동원체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특히 황산벌 전투가 2일에 걸쳐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원조를 받지 못한 것은 당시 동방 지역 방어체계의 약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황산벌전투에는 좌평 관등의 충상·상영, 달솔의 계백이 함께 출전하였는데, 계백이 총사령관이었다. 관등이 낮은 계백이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東方의 方領이었고, 5천 결사대의 대부분이 동방 소속의 상비병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황산벌전투는 지형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결전은 벌판에서 벌어졌다. 이는 당시의 군사적 상황이나 전략이 부족한 충상과 상영이 신라군의 황산벌 진입에 대한 위기의식에 서 전면전을 펼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 결국 황산벌전투는 사비기 군사 운용체계의 변화로 군사동원 및 방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사력의 부족과 지휘체계의 혼선으로 인한 대응실패로 인해 패배한 것으로 이해된다.
Abstract
This paper takes an in-depth study on the reality of Hwangsanbul Battle in the aspect of changes in military operation system in Sabi period of Baekje. The military organization in Sabi period of Baekje was based on the administrative districts and Bangryeong/ a military chief who was a local governor was in charge of operation as a military commander at the same time. However, the military power and local defense system had been weakened in period of King Mu and King Euija with a military operation strategy which was central troop oriented and a base fortress attacking strategy for regions in Silla. This caused a weakened regional defense system and dispersion in military power. As a result, the military district with Bang, Guen and Hyun had been weakened and could not cope with regional and preemptive attacks from Silla. Silla put in requisition from inhabitants in administrative districts from Guen and Sung from all over the country and used them for defending local battle fields. Silla kept regular troops for central areas but Baekje operated a central troop oriented military operation. It led to the split of public sentiment and low moral from decreased number of troops and frequent discharge. The local defense system also got weakened based on local administrative system with Bang, Guen and Sung. In the year 660, the Silla-Tang army crossed Tanhyun and moved forward to Hwangsanbul. Change in border lines between Baekje and Silla was a reason for this. Yuensan area which Hwangsanbul battle occurred turned into front lines from a rear region on terms of relation with Silla. Silla troops with 50000 soldiers could break through Baekje's surveillance because most of eastern areas were under Silla's control. Defending 50000 Silla soldiers with only 5000 soldiers suggests that Baekje had problems in military operation, defense system and military mobilizing system. Because of this weakened defense system for eastern areas, there was no military support for 2-day battle in Hwangsanbul. In Hwangsanbul battle, Gyebaek of Chungsang, Sangyoung, Dalsol from Joapyung Gwandeung went to war as a supreme commander. Gyebaek was from low Gwandeung level but he was good at geography in eastern areas and most of 5000 soldiers were standing army belonging to eastern areas. These were reasons why Gyebaek could be a supreme commander. Despite the disadvantageous geography of Hwangsanbul, the very last war occurred at the field. Considering military conditions and Chungsang with lack of military strategies and Sangyoung's consciousness of crisis from Hwangsanbul entry of Sillar troops, the war turned into a full- scale war at Hwangsanbul. Finally, Hwangsanbul battle failed due to insufficient military power and confusion in a line of command in a situation without proper military mobilization and defense system working from changes in a military operation system in Sabi period.
참고문헌 (46)
- 강종원, "논산 황산벌 전적지" (2000)
- 강종원, "고대도시와 왕권" (2005), 서경
- 권덕영, "백제 멸망 최후의 광경", 역사와경계, (93), pp.1~29 (2014), 부산경남사학회
- 김병남, "백제 의자왕 초·중기의 영역 변화", 충청학과 충청문화, 4 (2005)
- 김영관, "백제실록 의자왕" (2008),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 김영관, "660년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에 대한 고찰", 신라사학보, (20), pp.93~152 (2010), 신라사학회
- 金英心, "百濟 地方統治體制 연구 : 5-7세기를 중심으로", 박사, 국사학, pp.1997
- 김종수, "백제 軍制의 성립과 정비", 역사교육, (103), pp.175~209 (2007), 역사교육연구회
- 김주성, "백제 지방통치조직의 변화와 지방사회의 재편", 국사관논총, 35 (1992)
- 김주성, "660년 7월 8일간의 전투 재구성", 백제문화, 56(0), pp.349~365 (2017), 백제문화연구소
- 김창석,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百濟ㆍ新羅의 전쟁과 大耶城", 신라문화, 34(34), pp.77~104 (2009), 신라문화연구소
- 노중국, "지방·군사제도", 한국사, 6 (1995)
- 노중국, "백제 부흥운동사" (2003), 일조각
- 문동석, "660년 7월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전투", 신라사학보, (38), pp.39~63 (2016), 신라사학회
- 문안식, "의자왕 전반기의 신라 공격과 영토확장", 경주사학, 23 (2004)
- 박노석, "백제 황산벌 전투와 멸망 과정의 재조명", 인문과학연구, (27), pp.355~376 (2010), 인문과학연구소
- 朴賢淑, "百濟 地方統治體制 연구", 박사, 사학, pp.1997
- 박현숙, "백제 군사조직의 정비와 그 성격", 사총, 47 (1998)
- 서정석, "탄현에 대한 소고", 중원문화논총, 7 (2003)
- 서정석, "百濟 山城을 통해 본 황산벌전투의 현장", 역사교육, (91), pp.127~155 (2004), 역사교육연구회
- 서정석, "의자왕의 전략과 황산벌전투의 실상", 군사, (76), pp.1~28 (2010),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성주탁, "조천성의 위치에 대하여", 백제연구, 4 (1973)
- 성주탁, "백제 탄현 소고", 백제논총, 2 (1990)
- 송영대, "6~7세기 신라의 전략‧전술 입안과 활용", 한국사연구, (169), pp.37~73 (2015), 한국사연구회
- 심정보,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2007), 충청남도역사문화원
- 심정보, "백제사상 황산벌전투와 삼영설치에 대하여", 충청학과 충청문화, 10 (2010)
- 양기석, "신라의 청주지역 진출", 문화사학, (11·12·13) (1999)
- 이남석, "泗沘都城의 景觀과 羅城의 築造背景", 백제문화, 1(50), pp.261~281 (2014), 백제문화연구소
- 이문기, "신라병제사연구" (1997), 일조각
- 이문기, "사비시대 백제의 군사조직과 그 운용", 백제연구, 28 (1998)
- 이문기, "백제의 정치제도와 군사" (2007)
- 이문기, "648⋅649년 신라의 對百濟戰 승리와 그 의미", 신라문화, 47, pp.195~240 (2016), 신라문화연구소
- 이병도, "한국사 고대편" (1959)
- 이상훈, "나당연합군의 군사전략과 백제 멸망", 역사와 실학, (59), pp.43~74 (2016), 역사실학회
- 이성시, "백제사상의 전쟁" (2000)
- 이우태, "신라 삼국통일의 일요인", 한국고대사연구, 5 (1992)
- 이인철, "신라의 군사조직과 그 운영실태", 군사, 28 (1994)
- 이인철, "강좌 한국사 제2권 고대국가의 구조와 사회(1)" (2003)
- 이재준, "백제멸망과 부흥전쟁사" (2017), 경인문화사
- 이희진, "백제의 멸망과정에 나타난 군사상황의 재검토", 사학연구, 64 (2001)
- 전영래, "탄현에 관한 연구", 전북유적조사보고, 13 (1982)
- 정영호, "김유신의 백제 공격로연구", 사학지, 6 (1972)
- 지헌영, "탄현에 대하여", 어문연구, 6 (1970)
- 논산 황산벌전적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2000)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백제사자료역주집-한국편Ⅰ-", ~ (2008)
- 홍사준, "탄현고", 역사학보, 35~36합 (19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