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로 본 백제 고도의 신라 지배 양상 - 부여·청양지역을 중심으로 -
A Study on Silla's local governance over the Old Capital of Baekje based on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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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의 지배 양상에 대해 파악해 보았다. 부여·청양지역의 통일신라시대 분묘는 석실묘와 화장묘가 주류를 이루는데, 현재까지 29개의 유적에서 확인되며 부여는 사비도성과 그 인근지역, 사비도성의 동쪽지역(석성면 일대), 서·남쪽지역, 청양은 동부(정산면·목면 일대)와 서부(청양읍·비봉면 일대) 지역 등 5개의 세부지역에 분포한다. 청양 동부지역, 사비도성과 그 인근지역의 분묘를 중심으로 유물을 검토한 결과 분묘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Ⅰ기는 고배, 구형병, 대부병이 중심이 되는 시기로 7세기 후엽의 이른 시기, Ⅱ기는 대부완이 중심이 되는 시기로 인화문이 성행하다가 무문화되는 양상이 이어지는데, 7세기 후엽의 늦은 시기부터 대체로 8세기까지로 보았다. Ⅲ기는 물레성형흔이 뚜렷한 연질의 대부완 등이 주류를 이루며 편호, 대부호 등도 공반되는데 9세기 이후로 볼 수 있다. 부여·청양지역의 통일신라시대 분묘유적 양상은 세부지역별로 시기와 내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부여의 사비도성 서·남쪽지역과 청양 서부지역은 다른 백제고지와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런데 사비도성의 동쪽지역과 청양 동부지역은 상당히 일찍부터 신라의 특징이 뚜렷한 분묘가 집중적으로 조영되며, 특히 청양 동부지역은 유물도 다양한 편이다. 이에 비해 백제 고도였던 사비도성과 그 인근지역은 8세기 전반에서야 신라 특징이 뚜렷한 분묘가 나타나며 그 이후에 상당히 성행하고 있다. 이는 백제 고도에 대한 신라의 지배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되는데, 신라는 백제 고도주변에 신라와 가까운 지방세력을 성장시켜 백제 고도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일정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그 위상을 회복시켜 주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과정에서 청양 동부지역은 분묘나 토기 등 신라 문물이 백제 멸망 후 상당히 일찍부터 나타나 지속되고, 위상이 그다지 높지 않은 토기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사민 정책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주된 대상은 신라 왕경의 주변지역민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patterns of Silla's local governance over Baekje's old capital by reviewing the data of tombs in Buyeo, and nearby Cheongyang during Unified Silla. Tombs were excavated at 29 relics across the area, which was divided into five sections including the Sabi capital city and its vicinity, its eastern part, and its western and southern part in Buyeo and the eastern and western parts of Cheongyang. The study reviewed the artifacts excavated at those tombs and found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tombs started right after the fall of Baekje and that the tombs were divided into roughly three periods. There were differences in the period and content of tombs and their relics according to the five sections of the Buyeo and Cheongyang area during Unified Silla. While the western and southern part of the Sabi capital city in Buyeo and the western part of Cheongyang showed no big differences from other old areas of Baekje, the eastern part of the Sabi capital city and that of Cheongyang started to build Silla tombs intensively at a very early time and had various artifacts. It was only in the former half of the eighth century that Silla tombs began to appear in Buyeo, the old capital city of Baekje, and its vicinity. Since then, the area witnessed the broad prevalence of Silla tombs. These findings seem to reflect Silla's ruling strategy over the old capital of Baekje. It is estimated that Silla incapacitated the power of Baekje's old capital by helping the local forces close to it grow around the old capital and planned to reinstate its status only after a certain period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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