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의 기초자 가인 김병로
Kim Byeong-Ro, the Framer of the Korean Civil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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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45. 8. 해방 이후 독립국가에서 법전편찬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독립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에 따라야 했던 일본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법전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민법 제정은 당대 최고의 법률가가 부여받은 임무였다. 김병로는 대법원장 취임 직후인 1948. 9. 15. 법전편찬위원장을 맡아 기본 법률의 제정에 온 힘을 쏟았다. 6·25전쟁으로 혼란스러운 틈에도 김병로는 1953. 7. 4. 민법초안을 완성하였고, 이것이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가 대법원장직에서 정년퇴임한 이틀 후인 1957. 12. 17. 민법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 후 민법제정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958. 2. 22. 법률 제471호로 공포되었고, 1960. 1. 1. 시행되었다. 김병로는 대법원장 재임기간 동안 사법부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법전편찬위원장으로서 민법 제정이라는 과업을 이루었다. 민법 제정 과정에서 김병로의 역할과 업적을 살펴보는 것은 대한민국 민법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민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제정민법의 주요 내용과 당시 입법자들의 근본사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민법의 기초자인 김병로가 우리나라의 민법 제정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고, 그의 사상과 이념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정민법의 주요 규정을 분석해보았다. 먼저 민법 제정 과정을 개관하면서 그 과정에서 김병로의 역할과 공적을 찾아 정리한 다음, 제정민법의 주요 규정에 관하여 당시 대한민국에 의용(依用)되던 일본민법, 즉 의용민법과 비교해보고, 이를 토대로 민법 제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김병로의 이념과 사상을 살펴보았다. 김병로는 일본민법을 대체하는 민법을 제정하되, 세계 여러 나라의 민법을 참고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와 풍속에 맞는 독자적인 민법을 제정하고자 하였다. 일본민법 등 외국의 법령은 참고용일 뿐 그대로 채택하지 않았다. 김병로가 민법초안을 기안할 때 일본민법에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래 우리나라 관습 등에 따라 인정되어 온 제도는 명문화한 반면, 일본민법에 존재하나 종래 이용되지 않은 제도는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수정하였다. 이것이 제정민법에는 일본민법에 존재하지 않거나 일본민법과는 그 내용상 차이가 있는 다수의 규정들이 있는 이유이다. 김병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상을 지양하고자 하였고, 자연법적 사고에 따라 법원칙을 존중하였다. 또한 합리적이고 현실적합성이 있는 민법을 제정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려고 하였다. 가족법 분야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과 순풍미속(淳風美俗)을 유지하되, 변화된 사회현실과 조화를 이루도록 가족제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김병로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독자적인 민법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Abstract
After gaining independence from Japan in August 1945, the Republic of Korea prioritized the codification of its legal system, which entailed developing new laws and codifying themseparate from the laws that the Japanese colonial rulers imposed on Koreans in 1919–1945to lay the foundations for Korea as a fledgling sovereign state. The history-making task of writing the new Korean Civil Code was given to the most accomplished legal expert of the time, Kim Byeong-Ro (also known by his pen name, Gah-In). On September 15, 1948, shortly after his inauguration as the first 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of Korea, Kim served as chairman of the Korean Code Compilation Committee and worked tirelessly toward codifying the law of his country. Despite the challenges from the Korean War, (1950–1953), Kim successfully finished drafting the Civil Code on July 4, 1953, and the draft code was submitted to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s a government proposal. On December 17, 1957, two days after Kim’s retirement as chief justice, the National Assembly passed a bill approving the Civil Code. On February 27, 1958, the Civil Code was promulgated as Act No. 471; and on January 1, 1960, it came into force. During his tenure as chief justice, Kim not only instituted an independent Korean judiciary but also accomplished the all-important task of drafting the Korean Civil Code. If we wish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origins of the Civil Code of Korea, it would be a worthwhile endeavor to examine the role that Kim played in creating the Civil Code and Kim’s relevant achievements. Furthermore, within the current context of considering amendments to the Korean Civil Code with some urgency, it would be essential to examine the principal elements of the Code and the Code’s guiding philosophy, which influenced the Korean legislators at the time of the Code’s infancy. Against the foregoing backdrop, this article reviews the role of Kim Byeong-Ro, as the central figure behind the Korean Civil Code, in authoring the Code while analyzing how his ideology and ideas are reflected in the major provisions of the Code. The article begins by retracing Kim’s process in writing the Code, highlighting his involvement and his accomplishments in particular. The major provisions of the Korean Civil Code are then compared with those of the Japanese Civil Code, as the latter was effectively in force in the Republic of Korea when the former was codified. Through this comparison, the article aims to examine Kim’s ideology and convictions as they came to be evinced in the course of drafting the Korean Civil Code. Kim was determined to create a Civil Code that would wholly supplant the Japanese Civil Codeand one that would be in harmony with the culture and customs indigenous to Koreans. To that end, he researched and studied the civil codes of many foreign countries. But he eschewed borrowing or adopting foreign laws in their original form. Instead, he only made use of them as a point of reference. In drafting the Korean Civil Code, Kim proceeded to codify what was in line with Korean customs and practices even when they did not exist in the Japanese Civil Code, while making a point of abolishing or revising what existed in the Japanese Civil Code that was alien to Korean soil. This is why a great number of provisions in the Korean Civil Code are not found in any form in the Japanese Civil Code. Or, even when they are, they differ in their content. Kim sought to avoid or limit unconventional or extremely individualistic views while honoring legal principles based on natural law. He also exhibited mindfulness of the socially and economically underprivileged by making a conscious effort to create a Code that was rational and reasonable in its particulars. In the realm of family law in particular, Kim attempted to reform the family system to make it jibe with the much-changed social reality at the time while remaining faithful to Korea's proper traditions, good morals, and ethics. It is largely owing to Kim’s genius, industry, and endeavor that the Republic of Korea can proudly claim its ownership of a Civil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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