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강화교섭과 유성룡의 외교활동(1593.4-1595.7)
The Peace Negotiation and the Yu Seong-ryong's Diplomatic Polic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1593.4-1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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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593년(선조 26) 10월 유성룡이 영의정에 임명된 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 중 하나가 강화교섭에의 대응이었다. 일본군이 같은 해 4월 부산 동래 등 남해안으로 후퇴했고, 경략 송응창 등은 일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과의 강화교섭을 선택했다. 선조는 명군과 협공하여 일본군을 패퇴시키기를 원했으나, 이는 송응창의 계획과 달랐다. 선조는 강화반대의 입장을 바꿀 수 없었고, 유성룡은 영의정에 임명된 이후에도 선조의 반대 원칙을 따라야 했다. 그럼에도 그가 중시했던 점은 조정 내 강화 반대 분위기를 따르면서, 명의 군사적 지원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영의정 유성룡의 조정작업과 설득은 그만큼 신중해야 했다. 기존의 연구성과에서 유성룡은 강화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인물 즉, ‘主和誤國’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는 측면으로 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유성룡과 강화교섭의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영의정 유성룡이 강화교섭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과 조정 내 논의를 수렴하는 과정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유성룡이 강화교섭 논의에서 어떤 논리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에 관한 서술이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Abstract
After becoming the prime minister of Joseon in October 1593, Yu Seong-ryong had to consider significantly how to respond to the Ming's request to accept the Peace Negotiation between Ming and Japan. Seonjo(宣祖), his king had wished to defeat Japanese army into ruin but the Ming military headquarter did not. Seonjo argued that only advocating war was the righteous cause, or way. Yu Seong-ryong followed the Seonjo's argument but he would find out a meeting point between the argument of upholding the cause and the request of accepting the Peace Negotiation. Because it is not possible to treat war situation without Ming's military support. In order to assess the historical aspect about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behavior of Yu Seong-ryong, it is essential to examine the background that he could not but include the Peace Negotiation as significant strategy. And then understanding of his coordinating process would lead to a conclusion that there were few ways but this not to be driven into critical situation in the war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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