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대한제국기 홍순형의 가계와 충주지역 토지소유

The Genealogy and Land Ownership of Hong sunhyeung, in Chungju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홍순형은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의 친정 조카이다. 그의 집안은 외척이 된 이후에 주요 관직에 진출하였는데, 당시 관직은 재산 축적과 유지에 유력한 방법이었다. 홍순형도 관직에 있으면서 많은 재산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충주의 여러 面에 토지를 집적하고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형태를 보여준다. 밭보다는 논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고, 비옥도 높은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토지는 차경되고 있었다. 당시 생산의 안정성을 위해 토지소유와 차경지가 있는 작인을 선호하였는데, 홍순형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토지는 남한강 줄기 지역에 많았는데, 이곳은 서울이 가까우며 수운을 통해 이동이 편리하여 지대의 상품화가 용이한 곳이다. 이런 이유로 충주의 대지주들이 남한강을 중심으로 토지를 집적하고 남한강 유통망을 이용하여 지주경영을 하였는데, 홍순형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그는 충주에서 3번째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생겨난 권력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권력을 이용하여 좋은 토지를 확보하고 주변 지역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amines Hong Sunhyeong's genealogy and landed property in Chungju area. Hong Sunhyeong's genealogy was a maternal relative one. He entered main government services at early age. At that time, the government post was an efficient tool to accumulate and store assets and Hong Sunhyeong also accumulated a lot of properties by using his post. He owned the third largest lands in Chungju area. He owned rice paddies more than fields. The largest parts of his lands were grade 3, followed by grade 2, which might be high in fertility. Most of lands were borrowed by tenants. At that time, landownership and tenants with borrowed lands were preferred for the stability of productivity, and such a tendency was also found for Hong Sunhyeong. There were a lot of lands along the courses of Namhan river, so grounds rent were easily commercialized due to convenient movements through water traffics and proximity to Seoul. Therefore, lords of broad acres in Chungju integrated their lands around Namhan river and conducted landlord farm managements by using the distribution network in Namhan river, as in the case of Hong Sunhyeong. He owned 3Sok, 95Bu, 66Gyeol of lands probably based on the power derived from his main government posts. He secured and gradually extended good lands to neighboring areas by using his political power, and integrated lands were concentrated on one or two areas.

참고문헌 (33)

  1. "承政院日記", ~
  2. "忠淸北道 忠州郡量案", ~
  3. "文義郡量案", ~
  4. "韓國忠淸北道一斑", ~
  5. "梅泉野錄", ~
  6. "南陽洪氏南陽君派世譜", ~
  7. "豊壤趙氏漢山君派世譜", ~
  8. "신사보감", ~
  9. "왜정인물", ~
  10. "중외일보", ~
  11. "동아일보", ~
  12. "대한매일신보", ~
  13. 강은경, "대한제국기 괴산 일대 순흥 안씨의 토지소유와 주거 실태", 한국사연구, (157), pp.77~138 (2012), 한국사연구회[DOI]
  14. 김병기, "조선명가 안동김씨" (2007), 김영사
  15. 김용섭, "조선후기 농업사연구 1" (1970), 일조각
  16. 金容燮, "증보판 朝鮮後期農業史硏究Ⅰ" (1995), 지식산업사
  17. 金容燮, "韓國近現代農業史硏究" (2000), 지식산업사
  18. 金容燮, "韓國近代農業史硏究 II" (2003)
  19. 남금자, "대한제국기 충주읍의 지주와 토지소유", 예성문화, 31 (2011)
  20. 남금자, "19세기 충주지역 외척 세도가의 토지소유와 지주경영", 박사, 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4
  21. 남금자, "대한제국기 충주 청주 한씨가의 토지소유와 지주경영", 역사와 실학, (59), pp.377~420 (2016), 역사실학회
  22. 신영우, "남한강유역 충주‧ 여주의 양안과 지역사 자료의 조사", 中原文化論叢, 11 (2007)
  23. 신영우, "대한제국기 충북 충주의 주거사정", 역사와 실학, (42), pp.5~51 (2010), 역사실학회
  24. 양웅열, "조선시대 王妃家門 연구", 박사, 국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3
  25. 임용한, "鎭川 논실의 平山申氏 將臣家門 硏究" (2009)
  26. 임용한, "광무양안과 진천의 평산신씨 무반가문" (2012), 도서출판 혜안
  27. 全遇容, "19세기말~20세기초 韓人 會社 硏究", 박사, 국사학, pp.1997
  28. 조남권, "김택영의 조선시대사 韓史綮" (2001), 태학사
  29. 최윤오, "조선 후기 유통망의 발달과 지주제 - 개인 양안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63), pp.3~84 (2003), 한국사회사학회
  30. 최윤오, "朝鮮後期 土地所有權의 발달과 地主制" (2006), 지식산업사
  31. 최윤오, "광무양안과 진천의 사회경제 변동" (2007), 혜안
  32. 최윤오, "대한제국기 충주군양안의 지주제와 농민층분해", 동방학지, (150), pp.273~317 (2010), 국학연구원
  33.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정치사 상" (1990), 청년사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