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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연구회의 내부 분열과 조선연극협회의 신규 발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internal division of Geugyesuryeonguhoe and the new launch of Joseonyeongeukhyeop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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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936년 6월 극예술연구회는 내부 분열에 직면했고, 이로 인해 11명의 회원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탈퇴를 선언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11명의 탈퇴자 중 일부와 동경 유학생 출신 연극인들은 극예술연구회가 확보하고 있던 신극 극단으로서의 독점적 지위에 반발하여, 또 다른 신극 단체를 표방하면서 조선연극협회를 창설했다. 조선연극협회의 창설은 신극 극단의 이원화를 불러왔고, 그 결과 극예술연구회의 변화와 함께 다른 측면에서 신극 공연의 새로운 개발을 유도했다. 조선연극협회는 신극의 대중화를 강조하였고, 창단 공연작으로 몰리에르(Molière) 원작 <수전노(L’Avare)>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936년 7월 이후 조선 신극계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극예술연구회의 분규를 신극 진영의 분화 과정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재현된 조선연극협회의 공연 성과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Abstract

In June 1936, Geugyesuryeonguhoe faced an internal division, which led to a situation in which 11 members publicly announced their resignation to the press. Some of the 11 defectors and the theatrical people from Tokyo students protested against the exclusive status of the Geugyesuryeonguhoe as a new theater company, and created the Joseonyeongeukhyephoy as another new theater company. The establishment of Joseonyeongeukhyeopoe brought about the dualization of new theater companies, and as a result, the change of the Geugyesuryeonguhoe and the new development of new theater performances were induced in other aspects. Joseonyeongeukhyephoy emphasized the popularization of new theater, and performed Molière(Jean-Baptiste Poquelin)’s original <L’Avare> as its founding performance. Joseonyeongeukhyephoy emphasized the popularization of new theater, and performed Molière’s original <L’Avare> as its founding performance. Therefore in this study the dispute of the Geugyesuryeonguhoe is understood as the process of differentiation of the new theater camp, and the performance works of the Joseonyeongeukhyephoy reproduced as such are intended to be re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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