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정책의 시행과그 배경
The Enforcement of Politics toward Old Territory of Baekje and Its Background in the Reign ofKing Gyeongdeok of Silla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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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경덕왕대 백제 고지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된 정책을 검토하고, 그것의 시행 배경을 신라인의 발해 인식과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신라 지배층은 발해에 대해 말갈이 주도하여 건국한 국가로 인식하였는데, 752년 김태렴이 이끈 대일 사절단이 귀국하면서 발해를 고구려계승국으로 파악하는 인식이 왕경에 확대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발해에서 시작하여 일본을 거쳐 신라로 유입된 것이다. 신라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백제 고지 지역민이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받아 백제부흥의식을 표출하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웅천주정에 장군 3인을 두어 반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체계를 갖추는 동시에 반란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렸으며, 효행을 실천한 향덕을 포상하여 국왕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였다. 경덕왕은 통제책과 회유책을 병행하여 백제 고지 지역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s politics implemented toward old territory of Baekje in King Gyeongdeok era and examines its background through cognition on Balhae in Silla. Silla's ruling class recognized Balhae as a country founded by Malgal. However, it changed in 752 when Kim Tae-ryeom Mission returned from Japan. Cognition that Balhae is successor of Goguryeo had rapidly spread in capital. This cognition began with Balhae and had flowed Silla via Japan. The people of the old territory of Baekje were in poor socioeconomic conditions. Silla tried to suppress they have consciousness of succeeding Baekje by the information of 'Balhae is successor of Goguryeo'. King Gyeongdeok had implemented control and conciliation policies. He announced the establishment of Janggun to counter a revolt in Woongcheonju-Jeong. In order to induce loyalty to the king, he rewarded Hyangdeuk handsomely for filial p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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