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곡의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의 변천 연구
A Study on the Reasons for Prohibition of Banned Songs and the Vicissitude of Censorship Crit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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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금지곡의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의 변화를역사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금지곡의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어떻게 변화했고, 그것을 변화하게 만든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배경 즉 영향사(影響史)는 무엇이었는지 고찰한 것이다. 정부에 의한 노래검열과 금지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1996년까지 시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적 의미의 노래검열관련 법령이 최초로 제정되었고 검열전담기구 설치를 통해 노래에 대한 검열이 시행되었다. 일제는금지사유로 치안방해와 풍속괴란을 설정하였고, 검열기준으로는 치안방해기준 28개항과 풍속괴란기준 11개항으로 표준화된 ‘일반검열표준’(1936) 을 수립하여 시행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노래에 대한 검열은 이루어졌고, 제정 <헌법> 제28조에서표현물의 검열을 가능케하는 근거가 마련되기도 했다. 노래검열이 체계화된것은 1960년대 들어 노래검열관련 법령(음반법, 방송법)과 검열전담기구(방윤, 예륜)가 설치되면서 이루어졌다. 해방 후의 노래금지사유는 월북・왜색・저속퇴폐・표절 등의 4대사유였다. 한국 금지곡의 역사에서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의 역사적 흐름은 역사적・ 사회적・정치적 배경과 관계가 있었다. 그 배경에 의해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이 변화하였다. 금지곡의 금지사유와 검열기준은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배의 차원에서 다루어졌고, 해방 후에는 사회체제관리의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Abstract
This study historically sheds light on the changes in the reasons for banning and censorship standards of banned songs according to the changes of the times. It examines how the reasons for banning and censorship standards of banned songs changed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 after liberation, and what the historical, social, and political backgrounds that led to such changes were, that is, the history of influence. The government’s censorship and banning of songs beg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was implemented until 199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first modern song censorship laws were enacted and censorship of songs was implemented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a censorship agency. The Japanese set the reasons for banning as disruption of public order and public morals, and established and implemented the ‘General Censorship Standards’ (1936), which were standardized into 28 articles on disruption of public order and 11 articles on public morals. After liberation, censorship of songs continued, and Article 28 of the Constitution provided a legal basis allowing censorship of expressions. Song censorship became systematized in the 1960s when laws related to song censorship (Records Act, Broadcasting Act) and censorship organizations (Bangyun, Yeryun) were established. The four major reasons for banning songs after liberation were defection to the North, Japanese influence, vulgarity, and plagiarism. In the history of banned songs in Korea, the historical flow of the reasons for banning and censorship criteria was related to historical, social, and political backgrounds. The reasons for banning and censorship criteria changed depending on the background. The reasons for banning and censorship criteria for banned songs were dealt with in terms of colonial rul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in terms of social system management after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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