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흥덕왕대의 정치와 儀禮
The politics and rites during king Heungduk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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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흥덕왕대의 정치와 의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흥덕왕은 왕 9년에 敎를 반포하였는데, 이 교는 애장왕대 이루어진 사치 금지 정책의 완결일 뿐만 아니라 골품제의 정비와도 관련있는 것이었다. 흥덕왕이 새로 정비한 골품제를 보면 기왕의 골품제와는 달리 당시 흔들리고 있던 골품제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게다가 한정적이지만, 지방인도 편제하였다. 이것은 골품제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개혁적인 내용이었다. 이러한 개혁정치를 통해 흥덕왕은 신라 사회의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흥덕왕은 교를 반포한 왕 9년에 大閱과 ‘觀射’의식, 巡幸 등의 군사의례(軍禮)도 행하였다.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군사의례는 제사와 함께 국가 중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볼 때 흥덕왕은 군사의례를 통해 자신이 반포한 교를 대내외적으로 표방하면서, 자신의 개혁 의지를 더욱 다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조묘․신궁 제사 등 다양한 의례를 통해서도 흥덕왕은 국가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흥덕왕 9년 왕이 내린 교는 ‘舊章’에 따르며, 이를 어기면 ‘常刑’으로 다스린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구장’과 ‘상형’은 율령으로, 흥덕왕 9년의 교는 율령과 연동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율령은 의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율령과 의례는 신라 사회에 들어와 골품제를 뒷받침하였고, 신라 하대 골품제가 동요되면서 율령과 의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커져 갔다. 흥덕왕 9년에 이루어진 교와 군사의례는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looked into the meaning the Pocitics and rites had during king Heungduk period. King Heungduk proclaimed Gyo at his 9th kingship, and this Gyo was not only the final one of prohibiting extravagance but related one with the organization of Golpoom system. Hungduk's newly organized Golpoom system accepted the very wobbling Golpoom system of those time different from foregone one. Besides, even local persons were included in the system even limited. This was the revolutional substance unacceptable in Golpoom sytem society. With such reformed politics, he tried to overcome overall a crisis. King Hungduk performed military ceremony(Gunrye) Daeyeol, 'Gwansa' ceremony, Soonhaeng etc. at his 9th year of proclaiming Gyo. Military ceremony was closely related with nationally important events with ritual ceremony in the premodern Asia society. From this, we found Hungduk consolidated his will for reforms, claiming to advocate his proclaimed Gyo internally and internationally. He tried to resolve national difficulties through various rites like Shijomyo. Shingoong memorial services. Gyo granted by King Hungduk at his 9th kingship was followed by 'Gujang', and in case of breaking this, it would be ruled by 'Sanghyung'. By this we found Gyo of king Heungduk 9th year was connected with laws since 'Gujang' and 'Sanghyung' were rules. Laws were inseparable with rites. These rules and rites supported Golpoom system in Shilla, and when the Golpoom system was wobbling in the latter period of Shilla, the roles of rules and rites became bigger. Gyo and military ceremony performed during king Heungduk's 9th year showed that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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