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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고기 초의 僧政과 寺主

The Buddhist Policy and Saju early in the medieval period of Silla.....Park Nam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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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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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승정기구의 성립 과정을 법흥왕․진흥왕대의 불교 정책 및 왕권과 관련하여 살피고, 초기 승정과 관련된 寺主와 寺典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이에 법흥왕과 법흥왕비가 불교정책을 펴나간 공간으로서 흥륜사는, 양무제가 처음으로 捨身을 행한 법흥왕 14년(527)에 착공하여 법흥왕 21년(534)에 大王寺로서 창건되었는데, 진흥왕 5년(544)에 이를 중창함으로써 大王興輪寺의 사액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경주공고 내 유구에서 출토된 명문와를 검토함으로써 ‘경주공고가 흥륜사지라는 견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주공고 유구는 신라 중대 大櫓院이라는 驛院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법흥왕과 법흥왕비의 불교정책이 양무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점에 주목하여, 법흥왕과 진흥왕의 출가설은 捨身 의례로 인한 것임을 추정하였다. 또한 법흥왕이 대왕사(흥륜사)에 주석하였다는 것은, 그가 흥륜사의 寺主를 겸하였던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법흥왕의 정교일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아울러 중앙관사 大道署의 별칭 寺典은 내성 산하 관사로서도 등장하는 바, 그 변화과정을 집사성의 전신인 租主와 내성관사인 租典과의 관계와 비교 검토하였다. 이로써 승정에 있어서 신라는 국왕의 고유 권한인 승려의 출가 및 승적의 관리, 사찰의 창건과 왕실 사찰의 관리 등을 국왕 휘하의 관제상에 두면서, 법회의 개최와 승려들의 계율 엄수, 수계 등의 사항을 승단에 위임하여 갔음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In this article, the author examine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the Buddhist policy organization in relation with the sovereignty and Buddhist policies in the reign of King Bupheung and King Jinheung in Silla and the early relations between Saju and Sajeon related to Buddhist policy. As a result of the research, it can be inferred that Heungryunsa Temple, as a key place where King Bupheung and his Queen carried out Buddhist policies, started to build in 527(King Bupheung 14), when the Emperor Wu of Liang firstly did Atmabhava-parityaga(捨身), and completed in 534 (King Bupheung 21)to be named Daewangsa Temple at first. After rebuilt in 544(King Jingheung 5), it was bestowed with the name, DaewangHeungryunsa by the King. In addition, I raised the doubt about what remains in Gyeongju technical high school belongs to the Heungryunsa site and clarified the fact that the site was originally the station office named Daenowon. As taking notice of the similarity of Buddhist policies between King and Queen Bupheung and the Emperor Wu of Liang, it is supposed that the opinion that King Bupheung and King Jinheung became Buddhist priests was related with the ritual of Atmabhava-parityaga(捨身). Additionally, it can be understood that King Bupheung's staying at Heungryunsa temple means that he held the position of Saju of the temple at the same time, which reflected an aspect of the theocracy at that time. Apart from that, I weighed the change process of Sajeon, another name of Daedoseo, against the relation with Joju, former Jipsaseong, and the Jojeon, the Royal Affairs Bureau(內省). Through this examination, it was revealed that King's own discretion including becoming a bonze, controlling the priesthood, establishing temples, and managing royal-patornized temples was controlled under royal bureau system and, concurrently, other things such as holing a Buddhist ceremonies, keeping a close watch of observation of rules and giving Buddhist commandments were delegated to the Sa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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