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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랑의 목랑신앙

Worshipping Mok-naang after the Appearance of Bee-hyeong-na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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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삼국유사』는 진지왕의 영혼과 사량부의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랑이 귀신들의 무리를 쫓아냈다고 했다. 『고려사』는 목매(=목랑=豆豆乙)가 집안을 평안하게 하며 외적을 물리친다고 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고 했다. 『동국여지승람』은 비형랑이 목랑(=두두리)신앙의 시초였고, 두두리 사람들이 영묘사의 3층 불전을 세웠다고 했다. 기존의 연구는 비형랑을 “용춘의 행적을 상징적 설화로 꾸미면서 가공적으로 만들어진 인물”로 해석해왔고, 목랑신앙을 ‘도깨비를 숭배했던 신앙’으로 해석해왔다. 본 연구는 비형랑의 목랑신앙을 새롭게 고찰하여 실체를 밝혔다. 목랑신앙은 도깨비를 숭배했던 신앙이 아니라, 도깨비를 포함하는 온갖 잡귀, 병마, 화재, 수재, 외적 등을 물리치는 『관정경』 제 7권의 문두루비법으로 판단되었다. 비형랑은 신라중대 왕들의 鼻祖인 용춘을 상징하는 설화적 인물이 아니라, 신라불국토설을 주창하고 삼국통일을 위한 종교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된 동방성인 안함(=안홍=밀본=환희사)의 별호로 판단되었다. 본 연구는 용춘을 진지왕과 지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 비형(=안함=안홍)을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결론지었다. 鼻荊郞은 ‘荊郞(=木郞)의 鼻’로 해석되었다. 木郞을 ‘荊郞’이라 했던 이유는 桃荊이 귀신을 물리치기 때문이며, 또한 벽귀를 사립문(=荊門)밖에 붙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형이 내쫓은 鬼衆은 전통신앙기반의 밀교승려집단으로 판단되었다. 비형(=안함=안홍)은 진평왕 27년(605)에 隋에서 귀국하면서 『금광명경』, 『불설관정경』 등으로 체계화된 밀교를 들여와 이론적 기반이 취약했던 전통신앙기반의 밀교를 제압했을 것이다. ‘목매’는 목랑을 비하한 표현이며, 豆豆里와 豆豆乙는 석장(=육환장) 즉 『관정경』 제 7권의 우권구마 지팡이이며, ‘두두’는 악귀를 물리치는 밀교의 주문으로 보았다. 비형 즉 안함(=안홍)은 신라에서 최초로 문두루비법을 실행했던 신인종과 총지종의 元祖로 판단되었다. 『삼국유사』는 안함(=안홍)의 태생과 성장기를 ‘비형’이라는 별호로 숨겨서 적고, 안함(=안홍)의 치병활동만을 ‘밀본’이라는 별호로 숨겨서 적고, 그 이외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Abstract

Worshipping Mok-naang(木郞) after the Appearance of Bee-hyeong-naang(鼻荊郞):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三國遺事』), a late 13th century text, stated that Bee-hyeong- naang was born between the ghost of King Jin-ji(眞智王) and a widow named Dou-hwa-yeo(桃花女) or Peach-Flower-Lady. The story goes that King Jin-ji asked Dou-hwa to have a relationship with him, but she declined, for she was loyal only to her husband. After the death of King Jin-ji in 579 and the death of Dou-hwa’s husband in 581, the late king’s ghost visited Dou-hwa and stayed with her for seven days. Dou-hwa then became pregnant and later gave birth to Bee-hyeong. Bee-hyeong in this narrative is being considered to be a fictional character representing Yong-chun(龍春) who was the son of King Jin-ji and father of King Mu-Yeol(武烈王). 『Geographic Survey of the Eastern Kingdom』(『東國輿地勝覽』), a 16th century text, stated that “Mok-naang, i.e., Duduri(豆豆里), has been worshipped since the appearance of Bee-hyeong-naang,” and that “Duduri chases away ghosts by posting spells at doors.” Mok-naang has been considered to be a dokkaebi, i.e., a goblin, made of wood. This paper examined the nature of Mok-naang. Mok-naang turned out to be the five Buddhist gods, appearing in the 7th book of 『Sutra of Consecration』(灌頂經), that repel goblins, ghosts, misfortunes, disasters, enemies, etc. The gods exercising the power of Mok-raang, i.e., gods’ mudra(神印), consist of Dìshìtiān(帝釋天) and Four Great Heavenly Kings(四天王). It seems that the Dragon Kings of Five Directions(五方龍神) can also seize the power. The five kings are the blue one in the east, the red one in the south, the white one in the west, the black one in the north, and the yellow one at the center. Many temples in Korea today have Four Great Heavenly Kings color-coded in this way. This paper also examined the true identity of ‘Bee-hyeong-naang. ‘Bee-hyeong-naang(鼻荊郞)’ translates into the ‘beginning(鼻) of thorn-man(荊郞)’ where thorn(荊), like peach(桃) in Dou-hwa-yeo(桃花女), has a power to sweep away ghosts, goblins, bad fortunes, etc. Bee-hyeong-naang turned out to be an esoteric Buddhist monk called Ahn-haam(安含), i.e., Ahn-Hong(安弘), a half brother of Yong-chun(龍春). According to 『Biographies of Eminent Korean Monks』(海東高僧傳), an early 13th century text, he was born in the year King Jin-ji died. He studied Esoteric Buddhism(密敎) in Sui(隋) from 601 and returned to Silla in 605 with a śarīra(舍利) claimed to be that of Śākyamuni(釋迦牟尼) and various sutras(佛經) presumably including the 『Sutra of Consecration』(灌頂經) and the 『Golden Light Sutra』(金光明經). Upon returning to Silla, Bee-hyeong-naang, i.e., Ahn-Haam(安含), removed the shamanic Buddhist monks from Heung-ryeun-sa(興輪寺), the first Buddhist temple in Silla, with a more formalized and systematic religious dogma imported from Sui. The ghosts that claimed to have built the Ghost Bridge overnight in Gyeongju(慶州), the capital of Silla, were the shamanic Buddhist monks.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used a number of different aliases for Ahn-haam i.e., Ahn-Hong. It used ‘Bee-hyeong-naang(鼻荊郞)’ to describe the birth and early life of Ahn-haam. Then, it changed the alias to ‘Mil-born(密本)’ to indicate that he had formed the root of Korean esoteric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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