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대의 花郞에 대한 補論
A Complemention on the Hwarang of King Gyeongdeok period in Shilla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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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대의 화랑문화를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中代의 쇠퇴기인 경덕왕대의 화랑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로서 당대의 화랑을 찾아내 살폈다. 현재 삼국유사에서 미상 국선과 기파랑, 삼국사기에서 대영랑, 서석에서 官郞과 慕郞 등 5명 화랑 후보군을 확인하였다. 관련 자료의 부재로 인해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으나, 기존 연구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 월명사가 모신 미상 국선은 화랑이 분명하나, 화랑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경덕왕대보다 앞섰을 수 있다. 특히 기존의 760년으로 본 도솔가의 제작 시기를 낮추어 볼 여지가 있고, 그에 따라 국선의 활동 시기도 재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충담사가 모신 기파랑은 찬기파랑가의 花判과 본 항목 도입부의 도덕경과 산신들을 통해 그의 화랑설을 보완하였다. 도덕경과 산신은 신선사상과 관련되며, 이는 화랑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화판은 舍人의 미칭이고, 사인은 신라의 남변제일(大舍)과 관련되고, 남변제일은 화랑이 그 역할을 마치고 初入仕路로서 받은 관등이었다. 대영랑은 756년 화랑을 마칠 때 받은 관등인 남변제일(大舍)을 주목해 그의 화랑설을 살폈다. 그는 慕郞과 동시대에 활동한 화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랑과 모랑은 천전리 서석에 746년과 756년이라는 절대 연대와 함께 확인된다. 관랑과 모랑이 화랑이라면 경덕왕대에 활동한 것이 분명하나, 이들의 화랑 여부를 밝혀줄 결정적인 자료가 없다. 관랑은 天官郞으로 볼 수 있음을 제시하고, 문무왕대 활동한 천관과는 동명이인임을 밝혔다. 慕郞의 경우, 기존과 다른 명문 판독을 시도하여 화랑이었을 개연성을 검토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hwarang culture of Silla middle age. In particular, as a basis for understanding the hwarang culture of King Gyeongdeok, which is the decline period of the Strengthening the monarchy period, I searched for the hwarang of the day. At present, we have identified five candidates for the hwarang, such as the Unknown Gukseon(國仙) and Giparang in the SamgukYusa, Daeyeongrang in the Samguksagi, Guanrang and Morang in the Seoseok. The unknown Gukseon is obviously a Hwarang, but the period when it acted as a Hwarang may have preceded the GyeongdeokWangdae. In particular, it is possible to lower the production time of the Dosolga(兜率歌), which is considered to be 760years, and the period of Gukseon's activity can be reviewed accordingly. As for Giparang, his theory of Hwarang was supplemented through the hwapan(花判) of Changiparanga(讚耆婆郞歌) and the introduction of this item, Dodeokgyeong(道德經) and a mountain god. Dodeokgyeong and a mountain god are related to Sinseon thought, because they also communicate with Hwarang. The hwapan is the euphemism of the sain(舍人), the sain is related to the Nambyeonjeil(南邊第一) of Silla, and the Nambyeonjeil was the first to be received after the Hwarang finished its activities. Daeyeongrang focused on Nambyeon Jeil, a government official he received at the completion of the Hwarang in 756, and examined his Hwarang theory. He can be said to have been active at the same time as Morang. Gwanrang and Morang are identified with the absolute dates of 746 and 756 in Seoseok, Cheonjeon-ri. Gwanrang and Morang are Hwarang, it is clear that they were active in Gyeongdeok Wangdae. However, there is no definitive data to reveal whether or not they are Hwarang. As for Gwanrang, it suggested that he could be seen as Cheongwanrang(天官郞), and that he was a different person from Cheongwan who was active during King Munmu. In the case of Morang, a different reading was attempted from the existing one, and the possibility of it being Hwarang was exa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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