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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신주편 혜통항룡조의 분석

「A Monk named HyeTong Subdued an Evil Dragon」 by Hwalsik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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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삼국유사』 신주편에 대해 김재경(1978)은 “除病을 내용으로 하는 것에 국한”된설화들을 주로 제시하여, 관련연구가 “除病活動을 중심한 연구로 制約되고” 말았으며, “新羅 密敎의 社會性”이 부각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혜통항룡」조에 관한 연구에서도 “僧侶와 政治勢力들이 밀접한 連繫關係를 가지고 권력투쟁에 참여하는” 측면은 검토되지 못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혜통항룡」조에 일연의 서술의도가 깊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듯하다. 본 연구는 『삼국유사』 신주편의 「혜통항룡」조에 내포된 의미를 살펴보았다. 「혜통항룡」조에는 의아한 서술들이 많다. 첫째, 혜통과 무외삼장 간의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혜통의 밀교사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唐의 교룡이 버드나무와 熊神 으로 변신했던 이유를 알 수 없다. 넷째, 일연은 入唐사신 鄭恭을 ‘鄭氏’였다고 했는데, 정씨였을 리가 없다. 다섯째, 신문왕 5년(685)에 成典사원으로 완성된 奉聖寺가 하찮은 원귀를달래기 위한 사찰이었다고 했는데, 신라가 원귀 따위를 성전사원에 奉聖했을 리가 없다. 「혜통항룡」조는 일연 혹은 일연 이전의 은휘로 뒤덮여있다. 본 연구는 ‘일연의 코드’를 해독하여, 「혜통항룡」조에 내포된 의미를 밝혔다. 혜통은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밀교승려로 드러났다. 혜통은 唐의 교룡이 신문왕의 원자를 주멸케 하고, 김유신의 아들을 처형케한 이후에서야 뒤늦게 기장산으로 가서 교룡에게 불살계를 내렸다. 무외삼장은 실존인물 선무외를 바탕으로 한 설화적 인물이며, 唐의 교룡은 신문왕 몰년(692)의 왕위다툼에서 獨柳의伏誅를 노린 후에 기장산으로 유폐되었으며, 鄭恭은 ‘鄭子產 其行己也恭’으로 은휘된 김유신의 아들을 지칭할 것이며, 『관정경』 등에 기초한 혜통의 神呪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별다른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봉성사는 김유신의 원찰이었으며, 절원당은 봉성사의 경내에 원성왕대의 전반(785~793)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되었다.

Abstract

『Left-out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三國遺事), a 13th century historical book written by Il-Yeon(一然), contains a story about an Esoteric Buddhist monk of Silla called HyeTong(惠通) who subdued an evil dragon from Tang China. The story is encrypted with allegories conveying semi-hidden meanings through symbolic figures or events. One day, HyeTong killed an otter but later found that the bones of the otter had returned to its den for its five babies. After the incident, he entered priesthood. Upon reading this part of the story, we are opt to think that HyeTong regretted killing the otter. However, at the end of the story the otter appears as an evil entity that had to be removed. It seems that HyeTong entered priesthood to prevent the five baby otters with a dragon from killing a young king of Silla. Hyetong returned to Silla in 655 after studying in Tang under the guidance of Śubhakarasiṃha. Śubhakarasiṃha was an Indian monk who had entered Tang in 716. Śubhakarasiṃha, a historic figure who abandoned his throne in an Indian kingdom after a fight with his brothers, in this part of story is a symbolic figure to indicate that Hyetong will be engaged in a similar fight. Hyetong cured the disease of Tang emperor’s princess by chasing away a dragon. The dragon from Tang flew to Silla to revenge Hyetong. Hyetong returned to SIlla in 655 with JeongGong(鄭恭) who reported the damages the dragon had made in Silla. Then the dragon transformed itself into a willow tree at JeongGong’s house. Twenty seven years later in 692, the dragon(=willow tree) made JeongGong to be executed, ran off to a remote mountain, and transformed itself into the ghost of the Yellow Bear(黃熊). JeongGong in this part of the story is a historical statesman of Silla whose identity is covered by Zichan(子産), a statesman of the ancient State of Zheng(鄭) in China. The willow tree represents the dragon’s intention to make JeongGong be executed. In Tang, traitors were executed under a lone willow tree. The ghost of the Yellow Bear(熊神) is very likely to signify that the dragon is evicted. The background of JeongGong’s execution appears at a totally different part of the book. The related story goes that two princes entered into Mountain O-Dae(五臺山) in 648. In that year, the king’s brother killed his 6-year-old nephew to be throned, but the Nation’s People(國人) evicted the king’s brother and made one of the princes, the younger one, in Mountain O-Dae return to the capital of Silla and ascend to the throne at the age of 16. A careful examination of the story, however, reveals that the incident was happened in 692, not in 648. It was the dragon from Tang and the five otters in the den that made the 6-year-old prince and JeongGong be killed in 692. The throned king in the story was King HyoSo who reigned from 692 and 702. The real identity of JeongGong is likely to be SaamGwang Kim, the first son of General YuShin Kim(金庾信) who had greatly contributed to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story, General YuShin Kim’s identity is also concealed by a revenging ghost called ShinChoong(信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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