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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산천제사와 진흥왕 순수비 입석 목적의 연관성 - 북한산비를 중심으로 살펴본 巡狩행적에서의 祀-

Relationship of Silla’the rites for mountain and stream and purpose of establishing Jinheung’ Sunsu Memorial St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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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는 지상이 아닌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 여타 중고기 신라의 비석과 달리 찬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등과 관련하여 한국 금석문에 있어서 무척이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석 연대나 입석 목적, 비문 해석에 있어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한 바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비석의 가장 중요한 사안인 입석 목적에 관해서도 ‘영토 확장의 기념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지만, 이에 대한 문제점들은 이미 선학들에 의해 많이 지적되었다. 이는 진흥왕 순수비로 지칭되는 총 4개의 비문 가운데 2개의 비문(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창녕신라척경비)만이 원본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의 경우에는 현재 확인이 가능한 글자가 제한적이어서 비문의 해석에 난점이 지적된다. 이러한 연구 상의 한계를 고려하여 본고는 비문 이해의 기본바탕이 되는 입석 목적을 새롭게 제언함으로써 진흥왕 순수비에 대한 보다 명확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두 가지 점에 주목하였다. 첫째, 신라의 다른 시기가 아닌 진흥왕 시기에 순수비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둘째,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져 있는 ‘산(山)’으로서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여 신라의 국가제사인 산천제사와의 연관성을 연구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고대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던 ‘산(山)’이라는 祭場의 신성성과 진흥왕 시기 영토의 확장과 더불어 단행된 중앙집권 정책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방에서 행해진 親祀의 행적을 진흥왕 순수비와 연결시켜 그 의미를 되짚어 봄으로써, 祭祀와 진흥왕 순수비 입석의 연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흥왕 순수비의 입석 목적이 ‘산천제사의 기념물’이라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기존의 ‘영토 확장의 기념물’이라는 거시적 해석을 보충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Abstract

Main issue related to purpose of establishing Jinheung’s Sunsu Memorial Stones is assertion told ‘monument of territory expansion’. But many problems related to this are being pointed out. Especially, it is pointed out that Memorial Stones made to be read is located in halfway up the mountain where its readability is poor. It is noteworthy that Bukhan mountain stele, Mawoonryeong stele, Hwangchoryeng stele etc. are found out in halfway up the mountain except for Chang-nyoung stele. This is location selection which is rare in Korean history. So, this means that purpose of establishing Jinheung’s Sunsu Memorial Stones should be investigated, giving careful attention on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From examining content of the Memorial Stones, it could be known through names of followers for a security squad for King (隨駕人名) described on end part of the Stones that people to play a role of memorial services were in attendance on a King. Bukhan mountain with Bukhan mountain stele was a place where Baekje royal family held memorial service with sacred meaning several times before King Jinheung occupied the area. It means that Jinheung’s visiting to such place in person was one of very important deeds in the process of Sunsu(巡狩). Accordingly, characteristic of ‘mountain’s location should be investigated under relationship with ‘the rites for mountain and stream’ which was unique in Silla. In such a place, memorial services would be held by Local powerful Gentry continuously. To control this, royal family in Silla made such memorial services be included to national memorial services. Accordingly, through meaning of such the rites for mountain and stream, it is guessed that the rites for Bukhan mountain newly occupied in King Jinheung reign would be the rites for mountain and stream. Through this, public sentiment was settled in Hangang and Hamgyeongdo areas where influences of Local Gentry were strong through the rites for mountain and stream while the rites would be held as part of centralization policy to include Local Gentry into central organization in Silla. It is interpreted in the process that Jinheung’s Sunsu Memorial Stones is a product of political thoughts of royal family in Silla then times, which played a role to reflect symbolism that Local Gentry is included to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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