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 신라토우 유형 검토
A Review of the Types of Silla Clay Figurines from Gyeongju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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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출토된 신라토우에 대하여 출토유적별 유형을 검토한 것이다. 신라토우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황남동 일대 석곽묘에서 출토됨에 따라 특정계층이나 집단의 무덤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먼저 경주지역 출토 토우의 유형을 정리하여 출토유적에 따른 유형 분류 및 정형성의 유무를 검토하였다. 토우의 등장은 왕릉급의 대형고분이 아닌 중소형의 적석목곽분에서 시작되었으며, 분묘유적에서 토우의 존속기간은 5세기 중후반에서 6세기대로 약 100년 내외이다. 적석목곽분 출토 토우의 경우 토기 표면에 한 점 혹은 두 점의 토우를 부착하였으며, 토우의 종류나 결합상이 단순하다. 6세기대에는 대부분 석곽묘에서 출토되었으며, 토우의 종류와 조합상이 다양해졌다. 이후 7세기대가 되면 토우장식토기를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은 쇠퇴한 듯하며, 신라왕경내 생활유적에서 간헐적으로 토우가 출토되었다. 분묘유적에서 출토된 토우는 대부분 토기에 장식된 부착형이고, 생활유적에서는 부착형과 더불어 단독형의 토우도 함께 출토되었다. 토우의 형식적인 특징을 보면 분묘유적에서 출토된 인물토우의 경우 성기를 과장한 경우가 절반이상이고, 얼굴에 가면 혹은 두건과 유사한 것을 쓴 모습, 물건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있는 모습, 손을 앞으로 내밀고 공수(拱手)하는 듯한 모습, 잡기 및 악기연주상과 더불어 기마인물, 승선인물,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은 장례의식 장면을 표현 한 듯하다. 생활유적에서 출토된 토우의 경우 출토위치가 불확실하고 파괴가 심하여 현재로서는 정형성을 찾기 어렵다. 다만 생활유적에서 분묘유적의 표지유물인 기마인물형토우와 마형토우가 지속적으로 출토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분묘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신라토우의 급격한 감소는 7세기대 법령의 규제를 받는 사회로의 변모와 불교의 도입으로 인한 장례의 간소화, 화장제도의 발달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으로 추정해 보았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classify the types of Silla clay figurines based on their excavation areas around Gyeongju, the capital of Silla. Most of Silla clay figurines were found in the stone lined tombs around Hwangnamdong a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is has led to a question whether those tombs were for a particular class or a specific group. In order to solve the question, the types of the clay figurines excavated from Gyeongju area have been sorted out, and existence of any stereotype was pursued. The introduction of the clay figurines of Silla were not from the large sized royal tombs, but from the small or medium sized stone-compiled wooden chamber tombs, and they lasted for about 100 years, ranging from the mid to late 5th century to the 6th century. The clay figurines from the stone-compiled wooden chamber tombs were with one or two small clay figurines attached to the surface of earthenwares, but the types and formation were simple. The clay figurines of the 6th century were mostly found from the stone lined tombs, and the types and combination of the figurines became various. Later, in the 7th century, the custom of burials of earthenwares decorated with clay figurines in the tombs seemed to be declined, they were found sporadically in the residential site inside the Silla royal precinct. The clay figurines excavated from the cemetery sites were mostly attached types, and those from the residential site of 7th century were, along with the attached type, independent type which was bigger than the attached type. The formal characteristics of the human-shaped clay figurines excavated in the cemetery sites were as follow. There were more than half of the human-shaped clay figurines with exaggerated genital organs, those with wearing a mask or a head-band, those with an object on the head or on the shoulder, those with hands stretching forward to show courtesy, those playing various instruments, those riding a horse, those getting on boat, and those with a cane which seems to depict funeral manners. The human shaped clay figurines excavated from residential site had severe damages, thus it was difficult to identify their original formation. It is notable that the horseback riding warrior figurines and the horse shaped figurines have been continuously found among the residential site. However, the clay figurines of Silla which were excavated in large quantities from the cemetery sites were dramatically reduced. This seems to have happened as the social reflection, which they had the simplified funeral procedure and the development of cremation system due to the fact the society transformed into the ordinance controlled one in the 7th century, and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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