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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天王寺와 文武王陵碑: 신라 陵墓와 추선 佛事 II

A Funerary Stele in a Buddhist Temple: Sacheonwangsa, or the Temple of Four Heavenly Kings and the Stele of King Munmu's Mausoleum of the Late 7th Century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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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文武王陵碑가 문무왕의 유해를 산골한 동해변이나 추복의 의미로 완성된 감은사가 아니라 낭산의 남단 사천왕사의 앞뜰에 세워진 이유를 7세기 후반~8세기 초 낭산 일대에서 행해진 능묘의 조영 및 추선 불사와 연관하여 재고해보았다. Ⅱ장에서는 근래 발굴을 통해 귀속에 의문이 제기된 문무왕릉비의 원 위치를 사천왕사 서귀부로 재확인했다. Ⅲ장에서는 문무왕릉비의 연구사를 검토해보았다. 기왕의 연구에서는 ‘庫門外廷’으로 전하는 문무왕의 화장터와 사천왕사를 연결하거나, 사천왕사를 문무왕의 원찰적 성격이 있는 곳으로 해석하여 그곳에 능비를 세웠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문무왕릉비의 건립 이후 그 인근에서 행해진 여러 役事를 주목했다. 이에 Ⅳ장에서는 7세기 후반 낭산의 동편으로는 신문왕릉, 효소왕릉이 조성되었으며, 신문왕, 효소왕의 추복을 위해 ‘종묘성령을 위한 선원가람’(傳 황복사)에 각각 탑을 세우고 사리와 불상을 안치했음을 조명했다. 이처럼 낭산 일대는 중대 신라 왕실의 또 다른 장지이자 추선 불사의 장으로 기능했는데, 여기에는 그에 앞서 사천왕사에 건립된 문무왕릉비가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제시해보았다. 일반적으로 왕릉의 조성은 장소의 상징성을 고려하여 왕경 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문무왕릉비의 사천왕사 건립은 낭산 일대를 왕실의 능역이자 추선 불사의 장으로 경영하고자 한 중대 신라 왕실의 계획 하에 행해진 것은 아닐까 제안해 보았다. 이처럼 왕경의 동편 낭산 일대에 왕릉을 조영하고 그에 인접해 추선불사를 행한 것은, 왕경의 서편 선도산 일대에 태종무열왕의 능을 기획하며 산 정상에 무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아미타삼존상을 세운 것과 상통하는 작업으로 보인다. 이처럼 문무왕릉비가 세워진 이후 사천왕사는 호국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문무왕릉비와 나란히 서 있었을 또 다른 비, 그리고 사천왕사지와 마찬가지로 두 기의 비를 세웠던 것으로 확인되는 전 황복사지와 함께 7세기 말~8세기 전반 낭산 일대의 특수성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reason why the “Stele of King Munmu (r. 661-681)'s Mausoleum” (hereafter King Munmu's stele) was placed in the front yard of Sacheonwangsa, or the Temple of Four Heavenly Kings, instead of the east coast where the king's cremated body was disposed or Gameunsa, or the Temple of Feeling Gratitude which was completed by his son, King Sinmun (r. 681-692) for the deceased father. While previous studies have paid attention to the fact that Sacheonwangsa was built by King Munmu himself, or linked Sacheonwangsa to the site where his body was cremated, this paper, critically reviewing past scholarship, illuminates the significance of Mt. Nang region where Sacheonwangsa stood. From the latter half of the 7th century, tombs of King Sinmun and King Hyoso (r. 687-702) were built on the east side of Mt. Nang. In succession, a pagoda for the former, and a reliquary set for the latter were created in a nearby temple currently attributed as Hwangboksa. This means that Mt. Nang region functioned as the place not only for royal tombs, but also for commemorating the entombed royal families through Buddhist ways. All these monuments lead us to consider that the decision of placing King Munmu's stele at Sacheonwangsa might be relevant to Silla government's plan to frame Mt. Nang region as the significant place for royal tombs and royal temples. This paper also highlights that the double project conducted around Mt. Nang region in the latter half of the 7th century parallels what had been done in the opposite side of the capital, Mt. Seondo where King Muyeol (r. 654-661)'s tomb was built and a gigantic statue of Buddha Amitabha was made. By placing the funerary stele at Sacheonwangsa, Silla Buddhists seem to have added another layer of meaning and function to Buddhist temples. This issue should be addressed again as the unique phenomenon of Mt. Nang region, particularly in relation with Hwangboksa, where a similar set of stele 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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