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海口 感恩寺의 기능과 의미 재고
Rethinking the Function and Meaning of Gameunsa on the Entrance to the East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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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왕암의 조영 동기와 감은사의 성격을 재검토했다. 우선 문무왕 유조를 검토하여 그가 화장을 택한 데에는 고대 신라의 후장 풍습에서 벗어나 박장을 하려 했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나아가 그간 동해구 불교유적 연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四天王寺와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검토하여 감은사의 성격이 호국에서 추복으로 변화했음을 밝혔다. 특히 文武王陵碑가 장지인 대왕암 근처나 감은사에 세워지지 않고 중고기 신라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천왕사에 세워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완공 당시인 682년경 감은사의 주된 기능은 사명이 시사하는 것처럼 추복을 위한 사찰이었다고 봤다. 감은사 금당의 조영 계획에 문무왕 자신의 불교적 생사관과 공덕관이 반영됐고, 신문왕대의 동서탑 사리장엄구 조성에는 추복 불사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론 본고의 시도가 대왕암과 감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호국이란 관념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호국 패러다임 속에서는 종종 간과됐던 문무왕이 선택한 장법의 의미를 당시 신라 상장례의 변화상 속에서 재검토하고, 문무왕의 사후 동해변이 불교적 장지로 성립됐다는 점을 부각해 신라인들이 나라 동쪽의 바다에 부여한 의미를 도출했다는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reconsiders cultural and historical implications behind the construction of Daewangam (Great King Rock), which has been widely believed to be the undersea tomb of King Munmu of the Silla Kingdom, and Gameunsa (Temple of Feeling the Grace). By examining King Munmu's last royal decree, it demonstrates that King Munmu chose to be cremated to pursue the frugal burial instead of the lavish funeral that had been a norm for Silla monarchs. This study also brings another important temple, Sacheonwangsa (Temple of the Four Heavenly Kings), into the discussion. This temple has been rarely discussed in previous studies of Buddhist sites located near the entrance to the East Sea. However, it should be noted that the “Tomb Stele of King Munmu” was erected at Sacheonwangsa, a representative of the state-protection Buddhism of the early and mid-Silla, instead of a site nearby Daewangwam or Gameunsa. The choice of the site, I argue, demonstrates that Gameunsa's main function shifted from protecting the state to commemorating King Munmu by the time when the stele was erected. My examination also reveals that King Munmu's view on life and death as well as Buddhist merit was reflected in the planning of the Golden Hall of Gameunsa. It further points out that King Sinmun, who succeeded his father, dedicated two reliquary sets for twin pagodas of the temple to pursue merit on behalf of the deceased king. This paper does not argue that the notion of state-protection should be eliminated in the study of Daewangam or Gameunsa. Rather, it re-examines King Munmu's intention behind the cremation against the changes in the burial of the time, while showing that the cost of the East Sea was established as the site of Buddhist burial. By doing so, this study sheds new light on the meaning invested in the eastern sea of the Silla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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