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파출소의 간도 문제 인식과 간도 문제의 식민화
Japanese Perception on Gando Issues and the Colonization of Gando Issues by Gando Police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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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존의 연구가 간도 문제와 간도파출소의 관련성이나 간도파출소의 활동에 중점을 둔 반면 본 연구에서는간도파출소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간도 문제의 역사가 ‘간광지대’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히고, 간광지대 개념이 대한제국의 간도 담론과는 상이한 식민주의 담론에서 기원하며, 간도의 영역도 ‘한인잡거구역’으로 전환되었음을 규명하였다. 간도파출소는 간도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간도 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 및 문헌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간도파출소 설립 이후 간도 문제에 대한 현지 조사는 물론이고 간도의 현황, 관습, 호구, 산업 등에 대한 각종 조사를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였다. 간도 문제 보고서를 통해서 살펴본 간도파출소의 간도 문제의 역사는 ‘간광지대’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간도 문제의 기원이 되는 것은 17세기 초 정묘화약으로 출현하여 2백여 년 동안 유지된 ‘간광지대’이고, 19세기 후반 청국이 간광지대를 개방하면서 한·청 간에 경계문제가대두되었다. 1880년대에 열린 국경회담은 미결로 끝났고, 러일전쟁으로 중단된 경계 교섭은 간도파출소 설치를 계기로 재개되었다고 보았다. 나이토에서 시노다로 이어지는 이러한 인식은 대한제국의 토문강 경계론과는상이한 것으로, 간광지대를 청국의 지배도 조선의 지배도 미치지 않는 ‘중립지대’로 간주하였다. 간도를 중립지대, 나아가 무주지로 바라보는 간도파출소의 인식은 유럽과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던식민주의 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간도파출소 설치를 통하여 간도를 확보하려던 일본 정부의 방침이 1908년 하반기 들어 바뀌면서 간도의 범위도 축소되었다. 간도 한인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타결하는 과정에서 간도파출소에서 상정한 간도의 범위는간도파출소가 관할하는 범위로 축소되고 길회철도 조문과 석을수 경계가 교환되면서 청국측의 석을수 경계가관철되었다. 일본 정부가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간도파출소의 존재는 유명무실하게 되었으며, 간도파출소가 관할하던 간도의 범위는 간도협약에서 두만강 이북의 ‘한인잡거구역’으로 남게 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discourse of Gando produced in the Korean Empire is appropriated by colonial discourse through the survey report produced by Gando police station. Gando police station conducted the field work and the documentary survey on Gando region before and after setting up the police station and submitted the survey report to Japanese Resident-General in Korea and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in Japan. Seen from the survey report on Gando issues, the history of Gando issues was composed with as the central figure of the concept, ‘in-between empty zone’(‘間曠地帶’). The origin of Gando issues was the zone which was appeared by a treaty between Qing and Joseon in the early 17th century and was maintained for two hundred years. When Qing opened the zone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demarcation issue between Qing and Joseon was emerged. Those who worked for Gando police station thought that the border meeting held in 1885 and 1887 was closed undecided and Japan reopened the border meeting after the Russo-Japanese war. The perception on the zone which was connected from Naito Konan to Jisaku Sinoda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perception on ‘Tumen boundary’ in the Korean Empire. They thought the zone was a neutral zone which was not ruled by Qing nor Joseon. As well as the concept that Gando was a neutral zone, go even further, ‘terra nullius’ was originated from the colonial discourse which jusified the imparial expantion by Europe and Japan. As Japanese Gando policy was changed in the late 1908, the range of Gando decreased. In the course of the negotiation of trial jurisdiction between Qing and Japan, the range of Gando was reduced to the jurisdiction by Gando police station and ‘Seokulsu(石乙水) boundary’ by Qing was fixed. When Japanese government gave up the Gando ownership, Gando police station remained nominal and the range of Gando was changed into ’Korean mixed residence area’(‘韓人雜居區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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