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汶, 帶沙 지명 비정에 대한 일고찰
The Study on Kimun(己汶) and Daesa (帶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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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는 6세기 백제가 남부 가야 지역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日本書紀』 繼體紀에 등장하고 있는 己汶, 帶沙의 지명 비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백제가 진출했던 己汶, 帶沙 지역은 백제와 가야와의 분쟁지라는 점에 있어서 이들 지역을 어디로 비정하는가에 따라 6세기 당시 백제의 판도 및 한반도 남부 정황과 관련하여 전반적인 인식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재 己汶, 帶沙 지역에 대해서는 帶沙를 섬진강 하류로 보고 己汶을 남원, 임실 등 섬진강 주변에 비정하고 있는 통설에 대해 己汶을 開寧으로 보는 낙동강 유역설도 있는 등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본고의 연구 결과, 己汶, 帶沙 지역을 音相似와 더불어 사료에 등장하는 지리적 위치 및 지형적 조건 등을 함께 아울러 고찰하게 되면 낙동강 중류 지역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三國史記』 地理志에 나오는 ‘多斯只縣’은 현재 대구 달성군 다사면의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일대로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죽곡동산성의 지리적인 위치를 통해 帶沙 지역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己汶의 경우도 죽곡동산성을 통해 낙동강 상류로 올라가는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新撰姓氏錄』에서 己汶이 任那의 東北에 있고 新羅와 相爭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천 開寧의 甘文國 일대를 중심으로 해서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고 있는 선산의 낙산동고분군까지 포함하는 지역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instate place names, Kimun (己汶) and Daesa (帶沙) and analyze relationship of Baekje (百濟) and Kaya (加耶) in 6th century. Meanwhile, the most of historical academic circle asserted that Kimun (己汶) and Daesa (帶沙), boundary of Baekje (百濟) and Kaya (加耶), were Sumjin-river (蟾津江) area and Kimun (己汶) was Namwon (南原), Daesa (帶沙) was Hadong (河東). But, this study philological and historical geography showed that location of Kimun (己汶) and Daesa (帶沙) was Nakdong-river (洛東江) area. That is, this analyzed Kimun (己汶) and Daesa (帶沙) were region of Kaeryung (開寧), Sunsan (善山) and Dasa (多斯) in Daegu (大邱) respectively. Therefore, we could understand that after Baekje (百濟) occupied Kimun (己汶) and Daesa (帶沙) of Nakdong-river (洛東江) area, oppressed Kaya (加耶) in the early 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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