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帝國主義下の朝鮮>은 없었는가? ―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內原忠雄)의 식민(정책)론과 대만・조선
Why did not Yanaihara Tadao write Korea Under Imperialism? - Yanaihara Tadao’s Colonial Studies and Taiw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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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45년 이전 일본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적 식민정책학자로 널리 알려진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內原忠雄, 1893-1961)의 식민(정책)론에 대한 연구는 이미 적지 않지만, 개별 식민지에 대한 연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만・만주・남양군도 및 인도 등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 대한 야나이하라의 학술연구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는 점은, 야나이하라의 조선에 대한 현실적・종교적 관심에 비추어 다소 의외이다. 왜 야나이하라는 『帝國主義下の朝鮮』 같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 본고는 야나이하라의 연구와 활동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이 의문에 답해보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야나이하라가 수행한 식민(정책) 연구의 중요한 특질이 보다 선명히 드러날 수 있고, 한 발 더 나아가서는 (특히) 대만과 조선의 식민지로서의 ‘차이’와 그 의미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주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기존 연구에서 지적한 식민지 조선 연구에 있어서의 외압은, 단지 조선 연구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대만 연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야나이하라에게 조선 연구가 상대적으로 결여되었던 점은 연구 외적 문제가 아닌, 연구 내적 문제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이 때 주목되는 것이 야나이하라의 식민지에 대한 일반이론이다. 야나이하라는, 문명화 작용을 동반하는 실질적 식민, 자치주의, 그리고 양자의 결합을 전제로 한 “각 사회군의 필요가 조화된 제국”을 상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반이론에 입각하여 전개한 대만 연구의 결과, 야나이하라는 ‘제국주의하의 대만’에 대해 “일본 식민지 중 가장 고도의 자본주의화를 달성”한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자본주의화(=문명화)에 상응하는 ‘문명적 식민 통치’, 즉 식민지의회의 설립을 요구했다. 반면 조선에 대해서는 대만에 비해 체계적인 경제 분석이 없었고, 조선의 자본축적과 재정 발달 역시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회의 설립을 요구한 점은 동일했다. 다시 말해서, 대만의 경우 식민지의회의 설립은 자본주의화 달성의 ‘결과’였던 데 반해, 조선의 경우 식민지의회의 설립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자본주의화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달리 말하면, 야나이하라는 대만의 경우 자본주의화(=문명화)를 동반하는 ‘실질적 식민’의 실체가 가시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식한 반면, 조선의 경우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가 정당화될 만한 충분조건이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식민지 조선 경제에 대하여 ‘침묵’했던 것은 아닐까.
Abstract
There are a lot of studies concerning Colonialism Studies by Yanaihara Tadao, who is well known as a passionate supporter of liberal colonial policies during pre-war period, but there is little studies which focused on his scarcity about studying colonial Korea. He was interested in almost all Japanese colonies including Taiwan, Manchuria and the South Sea Islands, but he did not express as much interest to Korea as to the other colonies, and this is very exceptional considering his academic career. Why did not he write a book like Korea Under Imperialism? This article tries to answer this question. The process of answering this question will help us better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his colony studies, and further understand the difference between Taiwan and Korea as Japanese colonies. External pressure, which previous studies pointed out as a cause of Yanaihara’s lack of Korea studies, can be equally applied to the case of Taiwan studies. Therefore we have to deal with this question from the other perspective, for example, from within his colonial studies. At this point, we have to pay attention to his general theory on colonies. He envisioned so called “substantial colonization” accompanying capitalization(=civilization), political principle of colonial autonomy, and “harmonious empire” in which necessities of each social group is well coordinated. He practiced Taiwan studies according to this general theory, and concluded that Taiwan has reached most highly capitalized society among Japanese colonies, and demanded so called “civilized colonial politics”, that is Taiwanese colonial assembly. In contrast, he lacked systematic analysis on Korean economy like Taiwan, and underestimated capital accumulation and finance development, but still insisted establishment of Korean colonial assembly. In other words, establishment of colonial assembly was the result of capitalization in Taiwan’s case, whereas establishment of colonial assembly was prerequisite of capitalization in Korea’s case. To sum up, Yanaihara thought that in Taiwan, the substance of “substantial colonization” accompanying capitalization existed in tangible form, but in Korea a sufficient condition through which Japanese government of Korea could be justified was not prepared yet. I think this led to Yanaihara’s silence on the economy of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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