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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식민정책학에 나타난 조선인식

The Japanese Perception of Korea represented in the Modern Colonial Policy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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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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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홋카이도 대학파’를 형성한 사토 쇼스케(佐藤昌介)와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의 식민정책론이 성립된 배경과 구체적인 논리의 전개 그리고 식민지와의 연관성 등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일본의 조선인식의 특징과 식민정책론의 상호관계를 고찰했다. 일본의 초기 식민정책학은 국민국가 일본의 국민통합정책과 연동되는 형태를 취하면서 정주 식민지로의 이주대책을 위주로 구축되었다. 초기 식민정책학은 홋카이도를 무대로 국민통합과 새로운 정주지 지배기구 수립이라는 측면에 주안점을 두었다. 청일전쟁의 결과 국내식민지 홋카이도에 이어 해외식민지 타이완을 영유하게 되면서 식민정책론은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 때 ‘홋카이도 대학파’의 초석을 마련한 사토 쇼스케는 종래의 ‘국내식민론’을 대신해 특히 ‘만한’을 중심으로 한 해외농업식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해외식민론’을 주창했다. 이렇듯 삿포로농학교 출신자가 조선에 진출하여 ‘해외식민론’을 구체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내식민지 홋카이도 ‘개척’ 경험이 본격적인 식민지 영유의 전사였음을 고려할 때, 일본 식민정책학의 계보는 삿포로농학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사토 쇼스케와 동세대였던 니토베 이나조는 일본의 식민정책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발전해 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계승한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식민정책학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Abstract

In this thesis, I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Japanese perception of Korea and the inter-relationship of colonial policy theory, by inquiring into the background of the colonial policy theory of Sato-Shoske(佐藤昌介) and Yanaihara-Tadao(矢內原忠雄), its concrete logical development, and the relation with the colony. The early Japanese colonial policy theory has been structured in the basis of emigration measure into the new colony with the policy of national integration. It focused the aspects such as the national integration and the ruling system establishment of new residential land on the stage of Hokkaido. Later, accupying Hokkaido and subsequently, Taiwan after the China-Japan War, the colonial policy theory began to change. Then Sato-Shoske, who founded ‘the Great Hokkaido School’, suggested the theory of ‘abroad colony’ instead of ‘domestic colony’ to promote abroad agricultural colony actively. Considering that the ‘developing’ experience of domestic colony, Hokkaido was the pre-history of substantial colony occupation, I think the genealogy of Japanese colonial policy theory went back to the Sappro agricultural school. Sato-Shoske and his contemporary Nitobe-Inazo have had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Japanese colonial policy theory. Yanaihara-Tadao, as their successor, has concreted Japanese colonial policy theory in a more strict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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