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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 도래계 관인의 훙졸전(薨卒傳)기사 연구-『속일본기(續日本紀)』~『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을 중심으로-

A Study of the Biography of Officials of Overseas Origins in Ancient Japan - Focusing on The Six National Hi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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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래계 관인들에게는 < 其先. (祖)~. >나 < A者. B子(孫)也. >와 같은 출자의 기록이 단순하게 훙졸전을 구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나라시대에서 헤이안 시대에 걸쳐 당시 위정자들의 시각의 변화와 함께 시대상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많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나라시대에는 桓武천황이 추진하던 씨족질서 재편의 움직임 속에 ‘功臣之家’ 로서의 최종적인 승인을 받기 위해 도래계 씨족들은 선조의 연혁을 부각시켰으며, 坂上씨를 제외한 모든 훙졸전에서 비도래계 관인과 대별되는 < 其先. (祖)~. >의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日本後紀』에서도 < 其先. (祖)~. >의 형식은 유지되었으며 ‘蕃人’ 이라는 노골적인 번속관념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즉 나라시대에는 도래계로 구분되는 선조의 연혁이 훙졸전을 통해 ‘功臣之家’ 로 최종적인 승인을 받는 전제조건이었다면, 이 시기의 < 其先. (祖)~. >의 형식은 당시 일본적인 화이관의 변화 속에서 비도래계 관인과 대별되는 번속자로서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文德天皇實錄』에서는 대학료 출신자의 증가와 함께 < A者. B子(孫)也. >의 형식을 취한 출자의 표기가 다수를 차지하는 점이 이전 시대와는 다른 점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은 도래계임을 나타내는 < 其先. (祖)~. >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선대로부터 뛰어난 가문의 연혁이 구체적으로 기술된 < (曾)祖~ >의 형식도 확인되었다. 나라시대의 개인의 공적 달성은 文才, 불상주조, 에미시 정토, 정변 진압의 공로 등과 같이 다방향으로 확대되었다면, 헤이안시대로 접어들면서 심화되는 숭문의 풍조와 함께 대학료 출신자, 國司로서의 청렴함과 목민의 임무를 완수하는 양리라는 명확한 기준점이 형성되어 갔다고 생각한다. 훙졸전의 官歷이 당시 천황과 관료간의 상호결합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면, 이 시기부터는 당시의 정치적인 과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기능적인 관료군으로 그 역할이 변모해갔음을 알아 볼 수 있겠다. 『日本三代實錄』에서는 도래계 관인의 특수성이 드러났던 < 其先. (祖)~. >의 출자형식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으며, < A者. B子(孫)也. >의 표기와 함께 무가의 坂上씨, 문장도의 都씨, 명경도의 菅野씨, 算道의 家原씨와 같이 고유한 가문이 형성된 씨족들로 한정되었다. 이와 같이 도래계 씨족으로서의 대별성은 완화되며 점차 가업의 유무가 졸전에 채록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薨卒伝は日本古代官僚制秩序の中で氏族の地位の確立と密接な関係をもち、時代ごとに特異性が表われ、六国史の性格にまで窺える核心的な内容であると言えるだろう。どころで、渡来系官人には、< 其先. (祖)~. >または < A者. B子(孫)也. >という出自の記事が単純に薨卒伝を構成する形式ではなく、奈良時代から平安時代にかけて渡来系官人に対する当時の権力者の意識の変化や時代像を読み取れる重層的な意味をもっていた。 まず、奈良時代には桓武天皇の時期に行われた氏族秩序の再編の中で‘功臣之家’としての最終的な承認をもらうため、渡来系氏族たちは先祖の沿革を強調し、その結果坂上氏を除くすべての渡来系官人の薨伝には日本の官人と区分される< 其先. (祖)~. >という形式で書かれた。 『日本後紀』の中でも< 其先. (祖)~. >の形式は継承され、軽蔑の意味をもつ‘蕃人’という用語も確認された。即ち、奈良時代には渡来系に思われる先祖の沿革が‘功臣之家’として認められる前提条件であったとすれば、この時期の< 其先. (祖)~. >という形式は、当時の華夷観の変化とともに日本の官人と大別される ‘蕃俗者’としての意味を有していたと思う。 『文德天皇實錄』をみると、大学寮出身の増加とともに、< A者. B子(孫) >という形式が多数確認できることが以前と違うところである。また、先代からの優れた家柄の沿革が具体的に書かれた< (曾)祖~ >の形式もみられた。これは、今後 < A者. B子(孫)也. >に変われる家柄の意味で、この時期国史に書かれるほど氏族秩序の確立と安定化に影響を及ぶ固有の家業の重要性がしだいに台頭する時期だと言えるだろう。また、良吏が数多く確認できることは、幼少の天皇が即位し、君恩ー奉仕を基本とする官人制秩序が揺らいでいく中、良吏として当時の政治的な課題を効果的に推進する機能的な官僚の役割が求められる時代に変化して行ったと思う。 『日本三代實錄』では、渡来系官人の特殊性が現れた< 其先. (祖)~. >の出自の形式が、もうみられないことが大きな特徴だと指摘できる。また、この時期は武家の坂上氏、文章道の都氏、明経道の菅野氏、算道の家原氏など、家柄が明確な渡来系官人に限って卒伝に名を載せた。これとは対照的に百済王氏の薨卒傳がみられないことは、文人社会が深化していく中で、文人出身者が一人しかいないこと、また諸氏族の家柄の特殊性が明確化してくる社会的変化に対応できなかったことによ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このように渡来系という大別性は緩和され、次第に家業の有無が卒伝に名を載せる重要な基準になっていったと言え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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