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 유학사 정리 작업에 대한 연구 - 宋秉璿의 성찰적 조선유학사 정리 작업을 중심으로 -
Study on arrangement about history of Chdsyn's Confucianism of in 19th century - focused on Song Byung-sun's reflexive theorem about the history of Chosun's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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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세기 후반기, 대내외적인 위기에 봉착한 조선말 도학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학문적 경향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유학사’에 대한 정리였다. 조선말기 도학계의 분열 양상을 반성하고 당파성을 극복하며,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위기에 빠진 사직과 도학을 부식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조선도학의 연원을 밝히고 도학사를 정리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도학자가 바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고, 그 대표적 저작이 『패동연원록(浿東淵源錄)』과 『근사속록(近思續錄)』이다. 송병선은 송시열의 9대손으로 호학의 학맥을 잇는 인물이지만, 그의 학풍은 자파의 학설만을 고수하는 호락 양파에 비판적인 가학(家學)의 전통과 일치한다. 『패동연원록』은 최초의 통사적 성격의 ‘조선유학사’로서 정몽주부터 오희상까지 69명의 도학자의 행적을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는 조선 도학의 본령은 극심한 분열에 빠진 말기의 학문에 있지 않고, 정몽주와 조광조 등이 몸소 실천한 도학적 의리와 이황과 이이 등이 창명한 정주학에 있다는 것을 여러 편찬방식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근사속록』은 『근사록』의 체계를 빌려서 조선 도학을 대표하는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송시열 다섯 사람의 사상을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송병선은 이를 통하여 학자들이 조선 도학의 요체를 알아 도학과 사직을 회복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러한 염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조선은 무너지고, 송병선 자신은 순국했지만, 조선 도학계에 성찰과 각성을 촉구한 그의 책임의식과 순국은 지식인의 시대적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Abstract
In 19th century Chosun was confronted with regional and gobal crisis, when appeared remarkable academic trends that took an interest in Korean history and arrangement of history of Confucianism. Reflecting the divisive aspects and overcoming partisanship andretuming to original form, Confucians desperately realized the need of revealing the origin of Confucianism of Korea and its arrangement. One of them was Yeonjae(淵齋) Song Byung-sun(宋秉璿) who wrote 『Paedongyeonwonrok(浿東淵源錄)』 and 『Keunsasokrok(近思續錄)』. Succeeding an academic tradition of ``Hohak``(湖學) Song Byung-sun, 9th descendant of Song Si-yul(宋詩烈), agreed the tradition of family that criticized ``Hohak`` (湖學) and ``Rakak``(洛學). As the first complete history of Confucianism of Korea『Paedongyeonwonrok』arranged deeds of 69 Confucians from Jeong Mong-ju(鄭夢周) to O Hie-sang(吳熙常). This book reveled that the true form of Confucianism of Chosun stood on ``Jeongjuhak``(程朱學) which was practised by Jeong Mong-ju, Cho Kwang-jo(趙光祖), and defined by Lee-hwng(李滉), Lee-yi(李珥). 『Keunsasokrok』was the book which edited the thoughts of five important Confucians, Cho Kwang-jo, Lee-hwang, Lee-yi, Kim Jang-saeng(金長生), Song Si-yul by borrowing the system of 『Keunsarok(近思錄)』. In this book Song Byung-sun hoped to reveal th core of Confucianism of Korea and to restore the Confucianism and national destiny. But desird of Song Byung-sun was not to be done, and Chosun perished. Ultimately his sense of responsibility demanding for introspection and awakening, and his dying for the country stimulated the reflection of duties of intellectuals in Chsun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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