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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20세기 초 ‘流配案’ 자료를 통해 본 島配 양상-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자료의 통계적 분석 사례-

Pattern of Banishment to Islands Found in Yubae’an (Document on Banishment) in the Late 19th and the Early 20th Centuries -A Case Study of Materials Held by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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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섬으로 流配된 죄인들의 유배지(섬 이름)․죄목․형량(유배 기간)․배소로 출발한 날짜, 그리고 移配․減刑․解配․도망․사망 등과 같은 다양한 유배 관련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流配案’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연구는 이들 유배안 자료에서 300명의 島配人 정보를 추출하여 이들의 정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19세기 말~20세기 초의 島配 지역은 총 20곳으로 나타났으며, 가장 많이 유배간 곳은 황해도 황주의 대동강 하류에 위치한 鐵島(전체 도배인의 18%)였다. 그 다음은 전라(북)도의 古羣山島(17%), 황해도의 白翎島(12%)였으며, 이밖에 도배지는 거의 전라(남)도에 위치한 섬들로 나타났다. 그런데 도배지로 확인된 섬들은 황해도 鐵島의 경우를 제외하면, 18세기 후반에 작성된 『典律通補』에서 규정한 絶島定配處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둘째, 도배인들의 죄목은 국가의 대역 범죄에 해당하는 ‘謀反’, ‘國事犯’, ‘壞損國權’, ‘內亂’ 등을 비롯하여 살인죄 및 그 미수죄인 ‘謀殺’, ‘謀殺未行’ 등과 방화, 사기, 위조, 절도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작성된 자료의 성격상 ‘을미사변’(1895년)과 ‘갑오농민항쟁’(1894년), 그리고 정부 大臣에 대한 시해 사건에 연루된 죄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셋째, 분석 자료가 ‘근대’적 개혁이 단행된 1896년(건양 1) 이후에 작성된 자료이기 때문에 전근대적 유배 형량인 거리제 대신 형기제 형량으로 기재되었다. 조선 정부는 기존의 ‘3천리형’, ‘2천5백리형’, ‘2천리형’의 유배 형량을 1895년에 ‘종신형’, ‘15년형’, ‘10년형’으로 개정하였다가 1896년에 다시 ‘7년형’, ‘5년형’, ‘3년형’, ‘2년6개월형’, ‘2년형’, ‘1년6개월형’, ‘1년형’ 등을 추가하여 세분화하였는데 자료에서도 개정된 10등급의 형기제 형량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종신형이 전체 도배인의 31%로 가장 많았으며, 이밖에 15년형이 18%, 10년형이 27% 등이었다. 섬 지역은 종신형을 비롯하여 중형에 처해진 유배인들이 안치되는 장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각 섬별로는 濟州島에 종신형이 가장 많이 안치되었는데(18%), 智島(14%)․古今島․楸子島․白翎島(이상, 각 11%)의 경우도 종신형에 처해진 도배인의 안치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다음 15년형은 황해도 鐵島가 가장 많은 것(29%)으로 나타났으며, 10년형은 古羣山島(22%)와 智島(21%)에서 그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다섯째, 도배인 가운데 처음 판결된 형량을 채우지 않고 減刑과 解配 등으로 형량이 변동된 자들은 약 70% 정도나 되었다. 장기 형량의 경우 유배 기간 동안 서너 차례의 감형과 해배가 진행된 반면, 단기 형량에서는 단 한 차례의 사면으로 해배되는 경우가 많았다. 감형의 경우 대체로 법률로 정한 유배 형량을 준용하여 차례대로 감형이 진행되었음도 확인되었다. 여섯째, 도배 후 赦免으로 해배될 때까지 소요된 평균 기간은 전체가 30개월(2년 6개월)로 나타났으며, 형량별로는 종신형이 57개월(4년 9개월), 15년형이 34개월(2년 10개월), 10년형이 22개월(1년 10개월), 5년형이 5개월, 3년형이 10개월, 2년6개월형/2년형이 6개월, 1년6개월형/1년형이 4개월 등이었다. 따라서 형기 시작 후 해배까지 걸린 소요 기간은 형량에 비해 매우 짧았음을 알 수 있었으며, 특히 1개월 미만인 경우도 6% 정도나 나타나고 있었다.

Abstract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is in possession of materials called Yubae’an (流配案). It contains the following details on banishment to islands in the late 19th and the early 20th centuries: place of exile (name of the island), charge, sentence (period of exile), date of departure, displacement of exile, discharge from exile, reduction of sentence, and criminal’s escape and decease. The author collects and analyzes information on the three hundred exiles in the above-mentioned data. The three hundred exiles were banished to a total of twenty islands in the late 19th and the early 20th centuries. 18% of them were banished to Cheoldo (鐵島) located in the sea near Hwangju, Hwanghaedo, 17% to Gogunsando (古羣山島), Jeollabukdo, 12% to Baengnyeongdo (白翎島), Hwanghaedo, and the rest of them to many islands in Jeollanamdo. They were also places of exile for thieves written in Jeonryultongbo (典律通補), except Cheoldo. Charges of the three hundred exiles were so various: treason such as conspiracy, violation of state power, and rebellion, murder or attempted murder, arson, fraud, forgery, and even robbery. Especially, most of them were involved in the peasant uprising in 1894, the assassination of the queen in 1895, and the murders of the high-ranking officials. As a result of the “modern” reforms in 1896, banishment was sentenced based on time, not distance. The sentences of the exiles were sentenced to life, 15 years, and 10 years. In addition, newly added 7 years, 5 years, 3 years, 2 years and a half, 2 years, 1 year and a half, and 1 year sentences were confirmed. 31% of them were sentenced to life, 18% to 15 years, and 27% to 10 years. It shows those islands were places of exile for those who were severely punished, including banishment for life. Those sentenced to life were most often exiled to Jejudo. 18% of those sentenced to life were exiled to Jejudo, 14% to Jido (智島), 11% to Gogeumdo (古今島), Chujado (楸子島), and Baengnyeongdo, respectively. Exiles sentenced to 15 years were most often to Cheoldo (29%), 10 years to Gogunsando (22%) and Jido (21%). About 70% of the exiles did not fulfill their initial sentence; they were either commuted or released. For those with long sentences, they were released after three or four commutations, and for those with short sentences, they were released on a single pardon. In most cases, commutations were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sentence of exile determined by law. Finally, the average time from exile to release of the three hundred exiles was thirty months (two years and six months). On average, the actual sentence was fifty-seven months (four years and nine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life, thirty-four months (two years and ten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fifteen years, twenty-two months (one year and ten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ten years, five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five years, ten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three years, six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two years or two years and a half, and four months for those sentenced to one year or one year and a half. The period from the start of the sentence to release was much shorter than the initial sentence. Even 6% of them were released within a month. The aspects of ‘modern’ exile punishment confirmed in this thesis are the last aspects of the Korean criminal justice system, which lasted for about 500 years until just before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enacted the “Joseon Criminal Order”(朝鮮刑事令. 1911) and applied the Japanese criminal law to colonial Joseon. It is meaningful in that it sh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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