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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역’의 ‘接境性’과 도서해양-해양 태동기 및 융성기를 중심으로-

The Border Characteristics of ‘Incheon Waters’ and Island & Sea-Concerning during the early and prosperous mari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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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해양 태동기와 융성기에 접경성의 특징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천해역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갈등의 해소과정을 거쳐 문화교류의 통로로 기능하게 되는 여러 양태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미추홀을 백제 초기 인천 해양세력의 원류로, 대진과 능허대를 인천해역 접경성의 태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대진은 지금의 문학산과 청량산 사이의 만입한 곳으로, 능허대는 문학산 서단의 현 옥련공원 일대로 비정해 보았다. 다음에 관미성은 4세기 말 광개토왕이 백제 진출을 위한 해양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공취한 곳으로 파악하였다. 관미성은 양국 사이 접견성의 갈등이 폭발한 현장으로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곶’의 지형으로 튀어나와 있는 오두산상에 비정하였다. 7세기에 이르러 동아시아대전으로 비화되면서 인천해역의 덕적도는 당 수군이 황해를 횡단하는 핵심 경유처로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적 접경성의 긴박감을 대변하게 된다. 660년 소정방이, 662년(혹은 663년) 손인사가 당 수군을 거느리고 황해를 횡단하여 덕적도에 경유, 주둔하였으니, 덕적도는 나당연합군 결성의 매개처이자 백제를 공파하는 교두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7세기 후반에 이르러 동아시아대전은 나당전쟁으로 전환되었다. 이 때 천성은 상륙하려는 당 수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신라의 해안수비대 사이에 혈전이 벌어지면서 동아시아적 접경성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현장이 되었다.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귀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그리고 일정한 숙려 기간이 지난 8세기부터는 당-신라-일본 사이에 평화적 문물교류가 활성화되었다. 인천해역은 이전 접경성의 갈등과 대립의 흑역사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중핵으로 떠올랐다. 가탐의 바닷길(‘高麗道’)에 의하면, 덕적도는 황해 횡단해로와 서해 연안해로가 교차하는 바닷길의 핵심 길목으로 자리잡았고, 강화도와 교동도 역시 산동반도에서 唐恩浦에 이르는 연안해로의 거점 섬으로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서긍의 바닷길로써 보면 인천해역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영종도(당시 자연도)에는 慶源亭이라는 객관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에서 사신 일행이 머무르며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급수문’ 구간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았다. 경사의 근원이라는 의미의 ‘경원’은 이자겸으로 대표되는 고려시대 인주(경원) 이씨 가문이 해양세력으로 급성장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d various aspects that function as a channel for cultural exchange through the confrontations, conflicts, and the process of resolving conflicts in the Incheon sea area due to the characteristic of border during the early and prosperous maritime period. First, Michuhol was examine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origin of the Incheon maritime forces in the early Baekje period, and Daejin and Neungheodae were seen from the perspective of the birthplace of border characteristic in the Incheon sea area. Daejin is the indented place between Munhaksan Mountain and Cheongryangsan Mountain, and Neungheodae was located in the current Okryeon Park area at the west end of Munhaksan Mountain. Next, Gwanmiseong Fortress was identified as a place where King Gwanggaeto of Goguryeo took over in the late 4th century to secure a maritime bridgehead to advance to Baekje. Gwanmiseong Fortress was the scene where the conflict of border between the two countries exploded, and it was presumed as the Odusan Mountain, which protrudes as the topography of the Cape at the point where the Han River and the Imjin River merge. As it turned into the East Asian War in the 7th century, Deokjeokdo Island in the Incheon sea area emerged as a key transit point for Tang’s naval force to cross the Yellow Sea, representing the sense of urgency of the East Asian border. Sojeongbang of Tang’s General crossed the Yellow Sea with naval force and transferred to Deokjeokdo Island in 660 and Son In-sa in 662 (or 663), so Deokjeokdo Island seems to have been a bridgehead for the formation of the Silla-Tang Allied Forces and attacking Baekje. By the late 7th century, the East Asian War had turned into the Silla-Tang War. At this time, Cheonseong became the scene where the conflict of East Asian border reached its peak as a blood clot broke out between the leader of Tang’s naval force trying to land and the coastal guard of Silla trying to block it. The war ended when the Silla-Tang War ended in Silla’s victory. And from the 8th century, after a certain period of deliberation, peaceful cultural exchange between Tang, Silla, and Japan was activated. The waters of Incheon have emerged as the core of maritime exchanges in East Asia, breaking away from the dark history of the previous conflicts and confrontations of border. According to Gatam’s Sea Road, Deokjeokdo Island was located as a key road for the crossing of the Yellow Sea and the West Sea, and Ganghwado Island and Gyodongdo Island also played a significant role as a base island for coastal sea routes from Shandong Peninsula to Dangeunpo port. In addition, according to Seogeung’s sea route we can feel the vitality of Incheon Sea. In particular, Yeongjongdo Island (at that time, Jayeondo Island) was equipped with an accommodation called Gyeongwonjeong, so the group of envoys stayed here and prepared to pass through the high-flowing area called “Geupsumun” located between Ganghwado Island and Gimpo. Gyeongwon, which means the source of the good things, was considered to reflect the situation in which Lee family of Inju (or Gyeongwon) represented by Lee Ja-gyeom, grew rapidly as a marine force during th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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