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토성에 관한 일고찰
Reserch about the Earthen Fortification of Geumgwan 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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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제까지 금관가야에 대한 연구는 대성동고분군에 왕묘급 대형 목곽묘가 집중적으로 조성되는 3~4세기 대에 편중되는 경향이 많았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대성동고분군에서 5세기 대 이후 왕묘급 고분이 조사되지 않았다는 점과, 고구려 남정 이후 대가야와 신라의 성장, 부산 복천동고분군의 급격한 성장 등을 근거로 5세기 대 금관가야 세력이 급격히 쇠퇴하였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400년 광개토대왕 남정 이후 고구려 남진정책에 의한 내륙 교역 발전과 교역 주체의 다원화는 해상교역을 중심으로 중계이익을 독점해오던 금관가야의 정치·경제력에 큰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와의 전쟁을 통해 변화된 국제정세를 체감한 금관가야 지배층은 금관가야 사회를 좀 더 집약적인 정치구조로 변화시켜야 할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금관가야 지배층은 5세기 대 봉황대 일원에 대한 대규모 간척사업과 토성 축조 등을 통해 중심지를 재정비하였다. 문헌상에서도 5세기 중엽 질지왕대 왕실 사찰과 왕후사 건립 등 국가체제 정비 노력이 기록된 점은 기존 고구려 남정 이후 금관가야 세력이 급격히 쇠락한 것으로 보는 견해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최근 발굴 조사된 적심건물지의 경우 가야지역 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목탑지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이 역시 5세기 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종합할 때 고구려 남정 이후에도 금관가야 세력은 대성동고분군과 봉황동 유적 일대를 중심으로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으며 치소의 정비를 통해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Abstract
Until now, the researches on Geumgwan Gaya tended to be concentrated in the 3rd and 4th centuries which is the period when large-scale wooden royal tombs were built in Daesung-dong ancient tomb cluster. It was interpreted that Geumgwan-Gaya's influence in the 5th century would have declined rapidly based on the fact that no post - 5th century royal tombs were investigated in Daeseong-dong ancient tomb cluster before 2000s, the growth of Dae-Gaya and Silla after Goguryeo's southern Conquest, and the rapid growth of Bokcheon-dong ancient tomb cluster in Busan. The development of inland trade and the diversification of trading entities by the southward policy of Goguryeo after 400 years of Gwanggaeto the Great’s Southern Conquest would’ve gave a massive damage to the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of Geumgwan-Gaya who has been monopolizing the relay profits around maritime trade. In addition, the Geumgwan-Gaya’s ruling class must have felt the urgent need to transform the Geumgwan-Gaya’s society into a political-intensive structure after experiencing the changed international situation through the war against Goguryeo. In response, Geumgwan-Gaya's ruling class reorganized Geumgwan Gaya's administrative office area through the reclamation projects at Bongwhangdae area and constructions of earthen fortifications in the 5th century. In addition, the recorded document of King Jilji's efforts to organize the national system like the construction of royal temple and royal Wanghusa were shown in mid - 5th century which shows a lot of instigation to the view that Geumgwan-Gaya’s power have fallen rapidly since the Goguryeo’s Southern Conquest. Especially, the Jeoksim Building Site, which was recently excavated, is believed to be the first wooden pagoda to be discovered in the Gaya region, and is also believed to have been built in the 5th century. Considering this, it is estimated that the Geumgwan Gaya forces were still in place centering the Daeseong-dong ancient tomb cluster and the ruins of Bonghwang-dong after the Goguryeo's Southern Conquest, and that efforts were made to organize the state system through the maintenance of the administrative office and the construction of tem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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