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연구의 회고와 제안
Retrospect and Prospect of Studies on the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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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임진왜란 연구를 회고하고 제안을 하고자 작성되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학계는 임진왜란에 대한 방대한 연구성과를 도출하며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중에 있지만, 역사사실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엄연히 차이점을 가진다. 본 글은 한중일 삼국의 임진왜란 연구를 정리하고자 한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전(배경, 원인 등), 전쟁과정(전략, 전투, 수군, 이순신, 명군파병, 의병, 승병, 군수·편제, 강화교섭, 사회·경제 등), 전쟁이후(항왜, 피로인, 문화교류, 인물, 여성, 교과서, 문학, 인식과 후대의 평가 등), 중국학계와 일본학계의 연구경향, 연구발전을 위한 제안 등이다. 1592~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은 16세기 동아시아의 거대한 충격으로 조선, 명, 일본의 삼국이 치열하게 참전했던 국제전쟁이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에 거주하였던 한국인들은 전례없던 전쟁경험을 전승하였다. 일본의 야만적인 침략에 대한 기억은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가지도록 했으며, 전쟁기억은 한국인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한국학계의 연구경향은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정신사적 측면에서 진행되어 국난극복사의 측면이 강조되고, 의병과 이순신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역할, 전쟁이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었다. 연구사 제안으로 첫째, 통계적 정리가 기초작업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둘째, 국제관계사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셋째, 통합적이고 구조적인 분석이 필요하며, 넷째, 정치외교사적 연구가 추진되어야 하며, 다섯째, 자국사중심의 시각을 벗어나야 하며, 여섯째, 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군사』지의 임진왜란사, 군사사 연구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
Abstract
The point of this paper is retrospect of studies on the Imjin War(壬辰倭亂) and prospect. Studies on the Imjin War conducted in Korea, China and Japan have made progress in many aspects, but the hard truth is the three countries have different perspectives on the same historic event. So, This paper will arrange a product of history’s study in Korea, China and Japan. The formation runs thus. Before the war: Background, causes and so on, course of the war : strategy, battle, navy, admiral Yi Sun-shin(李舜臣), send a Ming army(明軍派兵), righteous armies(義兵), monk soldiers(僧兵), logistics(軍需), Negotiations and truce(講和交涉), society·economy(社會·經濟) and so on, postwar : hangwae(降倭), Joseon captives(被虜人), cultural exchange(文化交流), person(人物), woman(女性), textbook(敎科書), literature(文學), recognition and description of future generations and so on, research trend of history in China and Japan, and I wish to suggest the direction of research. The 1592-98 Imjin War was sixteenth century Asia's biggest international conflict and a war that set the tone for relations between the three major combatants, Korea, China and Japan. It seems to be geopolitical destiny that the people living on the Korean Peninsula for several centuries had to endure the tragedy of war again and again. The brutality of the Japanese invasion, at the end of the 16th century, not only sowed the seeds of bitter resentment and hostility toward the Japanese, but also made the memory of war grow deep roots in the consciousness of the Korean people. Korea's studies of the war, on the other hand, have been focused on a mental perspective such as how to overcome the war, roles of army raised in the name of justice and key figures, and effects of the war on Korea. Taking into both of the two different perspectives account should be the way studies on the Imjin War are conducted. To this end, researching and studies on many aspects are required. These aspects should include the following; First, Korea's studies have to collect, classify, and statistical readjustment at original documents and monuments in Imjin War historical materials. Second, the war should be looked into from hist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East Asia's perspective to understand that the warcaused conflicts of cultures and brought changes as well as it took place when cultures were exchanged through the seas. Third, objective terms need to be defined for the studies depending on the view of whether to see it as an invasion of Japanese raiders or a war between two countries. Fourth, Korea's studies need access political and diplomatic history. Fifth, Korea's further studies are needed to determine unification and multiculturalism and have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national history. Sixth, That should correct interpreta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times and historical material. Furthermore, <Military history(軍史)> have to collecting paper and supporting academic activity in military history's a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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