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전쟁
東アジア国際戦争としての「壬辰戦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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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전쟁은 16세기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제전쟁이었다. 참전국의 숫자나 전쟁의 규모, 전후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다. 본 논문은 임진전쟁에 관해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전쟁이라는 성격을 중시해 외교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였다. 본론에서 주로 논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전쟁의 명칭에 관해 한국, 북한, 중국, 일본, 서양에서의 사용례를 검토해 보고, 각각의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객관적인 용어로서 ‘壬辰戰爭’(The Imjin War)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하였다. 둘째, 임진전쟁이 초래한 바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변동에 관해 일본의 정권교체와 조일간의 국교 재개, 중원에서의 왕조교체, 중국과 일본의 관계 등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셋째, 임진전쟁에 대한 기억과 상호인식을 각 나라별로 분석하였다. 조선은 전쟁 후 명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對明義理論으로 연결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전쟁 중 전국민의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 적개심이 심화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전쟁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기록이 없다. 막부에서 편찬한 ‘正史’가 없는 대신 참전한 藩에 의해 편찬된 武勳談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이 전쟁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며, 해외에 일본의 武威를 떨친 위업으로 칭송되기까지 하였다. 이 전쟁에 관한 역사기록의 결여와 비판의식의 결핍은 300년 후 같은 세력에 의해 다시 침략전쟁으로 되풀이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전쟁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과 과제로서 세 가지를 제안하였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 사회사・생활사・민중사적 접근을 통해 이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점, 동아시아 평화를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역사인식을 가지고 연구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점 등을 제시하였다.
Abstract
「壬辰戦争」は、16世紀末に東アジアで起こった国際戦争であった。参戦国の数や戦争の規模、戦後の影響の大きさは、東アジア史上他に類例を見ない程であった。この戦争の結果によって、東アジアの国際秩序は、全面的に再編された。本論は「壬辰戦争」の「中世東アジアの国際戦争」という性格を重視して、その外交的な側面を中心に再証明したものである。本論で主に論議した内容は、以下の通りである。まず、戦争の名称に関して、韓国、北朝鮮、中国、日本、西洋における使用例を整理し、それぞれの意味と問題点を検討した。その結果、これからは、世界的に通用する客観的な用語である「壬辰戦争(The Imjin War)」と呼ぶのが妥當であることを提唱した。次に「壬辰戦争」が齎した東アジア国際社会の変動に関して、日本の政権交代と朝日間の国交再開、中原での王朝交代、中国と日本の関係などに分類して考察した。第三に「壬辰戦争」に対する記憶と相互認識を各国別に分析した。朝鮮は戦後、明に対して負債意識を持つようになり、対明義理論へと繋がっていった。日本に対しては、全国民の直接的な戦争体験によって敵愾心が深くなった。一方の日本では、この戦争に関する公式的な歴史記録=幕府が編纂した「正史」が存在しない代わりに、参戦した藩が編纂した「武勳談」が存在するのみである。その結果、この戦争は敗北したものではなく勝利したものであり、海外に日本の武威を轟かせた偉業として称賛までされた。この戦争に関する歴史記録の欠如と批判意識の欠乏は、300年後に再び同勢力による侵略戦争を産み出すこととなった。最後に、この戦争に関する研究の望むべき方向性と課題として、三つの提案を行なった。東アジア的観点で接近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点、社会史、生活史、民衆史的接近を通して、この戦争の多様な側面を再照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点、東アジアの平和を志向する未来指向的歴史認識を持って、研究の方向性を設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点がそれ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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