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일제 식민권력의 기록으로 본 보천교의 민족주의적 성격

A Study on the Nationalist Character of BoCheonGyo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종교학

초록

본고는 차경석과 보천교 교단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일제 식민권력의 기록물들을중심으로 고찰하여 보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국운이 기울어버린 상황에서종교 더욱이 민족종교 창교주의 운명은 순탄할 수만은 없었다. 차경석은 교명도 내걸지 못한 채 창교의 초기부터 민족의식과 민족사상, 민족운동 등을 예의 주시하는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고, 뒤에는 혹심한 탄압(취체)을 피해 수년간 은피의길에 나서기도 했다. 보천교는 3⋅1운동 이후 민족독립운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교단 내부에서 고민과 간부들의 협의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와 연결되어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북만주 지역에 김좌진 등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민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여 별동대를 구성, 일제에 저항케 했는가 하면 남만주를 중심으로 세워진 정의부에도 자금을 제공하여 민족사업을 영위하면서 포교는 물론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려 구체적으로 계획, 실행에 옮기려 하던 중 검거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대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보천교 역시 식민지 상황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자각하고민족적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해방 이후 근년까지도 차경석과 보천교는 긍정적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유사종교, 사이비종교의 대명사로치부되어 왔고 그런 과정에서 보천교의 민족주의적 성격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극히 종교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이며 일제강점기 형성된 식민주의적 시각이다. 이제 늦었지만 그러한 보천교에 씌워진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시각을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st character of new-religion, expecially BoCheonGyo and its founder Cha Kyung-Suek’s activities that appearing in the archives and documents of the Japan Government-General of Chosen. There are still plenty of debates and discussions about the BoCheonGyo, the typical example of the so-called new religions which had come into existenc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contents of debate about the BoCheonGyo are the matter of quasi-religions, the relation with the National Independent-Movement. Discussing those matters, it is certain that the negative sentimentality against BoCheonGyo was already firmly established in that times. But despite the fact that the BoCheonGyo was recognized as being a quasi-religion, the size of the BoCheonGyo was enlarged in the 1920s after 3⋅1 Movement. So it becomes clear that the BoCheonGyo suffered heavy damage by the Japanese Colonial Power. It should be noted to be condemned of being a anti-social, anti-national as the Japanese Colonial Power intentionally spreaded malign propaganda to oppress the religion. But, as a result of researching, it is found that Cha Kyung-Suek is the target of police supervision in the 1910s constantly and, after the 3⋅1 Independence-Movement, BoCheonGyo has taken a very active part directly and indirectly in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Expecially, BoCheonGyo has been acting the best role in supporting the government-in-exile in ShangHai and independence-movement group of Manchuria Region (a General Kim Juoa-Jin and so on). These documents give a demonstration of BoCheonGyo’s positive activities that realizing the condition of colonial situation and never forgetting the calling of Korean people.

참고문헌 (51)

  1. 국가보훈처, "大韓民國臨時政府關聯 要視察人名簿" (1996), 국가보훈처
  2. 國史編纂委員會, "要視察韓國人擧動 1, 2, 3" (2001), 國史編纂委員會
  3.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三一運動篇 其二)" (1978), 국회도서관
  4. 김재영, "보천교 천자등극설 연구", 한국종교사연구, 9 (2001)
  5. 김재영, "보천교와 한국의 신종교" (2014), 신아출판사
  6. 김철수, "1910-1925년 식민권력의 형성과 민족종교의 성쇠-『보천교일반』(1926)을 중심으로-", 종교연구, 74(2), pp.31~62 (2014), 한국종교학회
  7. 김철수, "일제하 식민권력의 종교정책과普天敎의 운명", 仙道文化, 20, pp.371~403 (2016), 국학연구원
  8. 노길명, "초기 증산종단의 민족의식과 민족운동" (1997), 순민사
  9. 박영재,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보내네" (2001), 운주사
  10. 박환, "김좌진 평전" (2010), 선인
  11. 方基中, "1920⋅30年代 朝鮮物産獎勵會 硏究", 國史館論叢, 67 (1996)
  12. 보천교중앙총정원, "보천교연혁사(상)" (1948), 보천교중앙총정원
  13. 비봉선인, "정읍의 차천자를 방문하고", 개벽, 10(38) (1923)
  14. 성주현, "식민지 시기 종교와 민족운동" (2013), 선인
  15. 안후상, "보천교와 물산장려운동", 한국민족운동사 연구, 19 (1998)
  16. 安厚相, "普天敎運動 硏究", 석사, pp.1993
  17. 안후상, "일제하 보천교운동(상⋅하)" (1992), 서해문집
  18. 안후상, "차월곡 출생에 관한 소고", 신종교연구, 2 (2000)
  19. 이강오, "보천교", 전북대 논문집, 8 (1966)
  20. 張錫萬, "開港期 韓國社會의 “宗敎” 槪念 形成에 관한 硏究", 박사, 종교학, pp.1992
  21. 장석만, "일제시대 종교개념의 편성" (2013), 책과함께
  22. 장신, "일제하의 요시찰과 倭政時代人物史料", 역사문제연구, 11 (2003)
  23. 조규태, "천도교의 민족운동 연구" (2006), 선인
  24. 홍범초, "보천교 초기교단의 포교에 관한 연구", 한국종교, 10 (1985)
  25. 靑野正明,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과 유사종교" (2013), 책과함께
  26. 桂島宣弘, "종교개념과 국가신도론" (2013), 책과 함께
  27. 村山智順, "조선의 무격" (2014), 민속원
  28. 姜德相, "現代史資料 25" (1977), みすず書房
  29. 慶北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 慶北警察部
  30. 朴慶植,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2)" (1976), 三一書房
  31. 全羅北道, "普天敎一般" (1926), 全羅北道
  32. 平安南道, "洋村及外人事情一覽" (1924), 平安南道
  33. 朝鮮思想通信社, "朝鮮思想通信" (1928), 朝鮮思想通信社
  34. 朝鮮總督府裁判所 大邱地檢金泉支廳, "例規ニ關スル記錄(1920-1923年)", ~ (1923)
  35. 朝鮮總督府學務局 社會敎育課, "朝鮮ニ於ケル宗敎及享祀一覽" (1939), 朝鮮總 督府
  36. 朝鮮總督府 警務局, "朝鮮出版警察月報 第106號" (1937), 朝鮮總督府 警務局
  37. 朝鮮總督府 警務局, "第73回 帝國議會說明資料" (1937), 朝鮮總督府
  38. 朝鮮總督府, "齋藤實文書 9" (1990), 高麗書林
  39.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施政年報" (1911), 朝鮮總督府
  40. 朝鮮總督府警務局, "諺文新聞差押記事輯錄" (1932), 朝鮮總督府
  41. 朝鮮總督府大邱地法安東支廳, "統計ニ關スル記錄(大邱地方法院蔚珍支廳)", ~ (1921)
  42. 京城地方法院檢事局高等警察課, "大正十三年管內狀況" (1924), 京城地方法院檢 事局高等警察課
  43. 大藏省管理局, "(極秘)朝鮮統治の性格と實績 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 的調査", 通卷 第 11冊, 1~170 (1947)
  44. 黑田俊雄, "日本宗敎史上の‘神道’" (1995), 法藏館
  45. 坪江油二, "朝鮮社會思想運動沿革略史" (1966), 嚴南堂書店
  46. 下中邦彦, "世界大百科事典" (1972), 平凡社
  47. 村山智順, "朝鮮の類似宗敎" (1935), 朝鮮總督府
  48. 南山太郞, "秘密結社の解剖(一)", 朝鮮公論, 112 (1922)
  49. 三木治夫, "綠旗" (1937), 綠旗聯盟
  50. 日本國立公文書館, "朝鮮人要視察人略名簿" (1945), 日本國立公文書館
  51. 吉川文太郞, "朝鮮の宗敎" (1921), 朝鮮印刷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