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보천교의 고민과 활로모색 -식민권력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Worry and Way Out of BoCheonGyou in The 1920s -Centered on Official Document of Japanese Coloni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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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10년대 초부터 시작된 차경석의 교단 형성은 뚜렷한 명칭은 없었지만, 차경석의 포교 노력으로 1916년에는 24방주 조직을 만들었고, 1919년 말에는 60방주 조직으로 확대 개편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식민권력은 제도적으로 종교단체의 활동을 통제해 나갔고, 차경석의 활동도 주시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차경석은 1910년대 초부터 은피의 길에 올랐고, 보천교는 3⋅1민족독립운동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천교는 3⋅1독립운동이 발발한 이후 재편된 60방주제 등을 토대로 급성장했고, 많은 교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당시 민중들 사이에 새로운 국가건설의 희망과 연결되며 회자되었던갑자년 천자등극설도 보천교의 성장을 돕고 있었다. 이는 간부들이 교세확장을 위해흘린 소문일 가능성, 혹은 보천교에 대해 악의를 가진 이탈자가 낸 소문일 가능성이높지만, 이러한 소문은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이는 보천교의교세확대에도 기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22년 초에 차경석 교단이 ‘보천교’로 등록되고, 1924년에 들어서면서 보천교 교단은 기로에 서게 된다. 약속되었던 새로운 국가건설이나 천자등극도 당연히이루어지지 않았다.따라서 교도들의 의구심도 증폭되었다. 지식인과 언론은 이 점을놓치지 않고 보천교를 미신⋅사교로 몰고 있었고 교단 내부에서도 혁신운동이 일어나는 등 보천교는 안팎으로 곤경에 처했다. 다양한 활로들이 모색되었고 그에 따른 고충들이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어긋난 선택들이 나타났고, 이러한 선택은이후 보천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외부적으로는 보천교 박멸운동이 일어났으며 내부적으로는 혁신운동이 발생하여 교단이양분되면서, 결국 보천교 교단은 1925년을 지나면서 교세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Abstract
BoCheonGyou was the Korea-occurred religion that Cha-KyungSeok created in the 1910s, began its religious activities in the early of Japanese colonial times, and perished almost with the death of the religious leader Cha(1936). In the 1910s, the name of this religion not existed officially. But with effort to missionary work of Cha and his co-workers, it was made the 24-executives system(24方主制) in 1916, and expanded and reorganized into 60-executives system(60方主制) in 1919. And the story of enthronement to the Son of the Heaven of Cha spread all over the country at that time. Therefore BoCheonGyou was developed to the grand denomination in 1920 and 1921. But in the same time with BoCheonGyou’s growth, the Japanese colonial power controlled and surveilled the religious groups by law and armed force in order to prevent national movement for independence, and keep a close watch on Cha’s movement. In the spite of colonial power’s surveillance, BoCheonGyou was developed on the basis of reorganized systematization, and enrolled the name of this religious group, that is ‘BoCheonGyou.’ But after that, BoCheonGyou stood at the crossroads. The official document(1924. 2. 20.) clearly showed that BoCheonGyou trod on dangerous situation and searched for a way out. Consequently, BoCheonGyou sought an alternative activities such as a popular social movement, migration to Manju region, new-building of BoCheonGyou’s church and school, and management of social service facilities. Around this time, what’s the matter with BoCheonGyou. This study attempts to explain the BoCheonGyou’s situation in Japanese colonial times, woe and its solution in the early of 1920s. In order to explain these, this paper describes the religious topography of Japanese colonial era, the BoCheonGyou’s dangerous situation in the 1920s, and its alternative activities centered on an official document of Japanese coloni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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