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찬자의 상고기 정치체에 대한 계승 인식
『三國遺事』 撰者の上古期の政治體についての繼承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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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本史로 적기하며 ‘遺事’를 서명으로 채용한 것은 『삼국사기』가 누락시킨 삼국사를 서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불어 首篇이나 다름없는 기이편의 自敍에서 신이사를 기록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처음부터 서명에서 주창한 ‘삼국’의 범위를 벗어나, 삼국과 공존하거나 상고 시대의 여러 정치체에 대해 독립전을 설정하고 신이사와 상관없는 내용을 상당 부분 기술했다. 이는 본서의 찬자인 일연이 상고시대 정치체가 삼국과 상관성이 있음을 주목하고 상호 관계를 구체화하려 했던 것으로, 이 과정에서 ‘二府’·‘七十二國’ 등이 전례없이 독립전으로 설정되며 의도적인 개작도 존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설정된 각 정치체간의 계승 관계는 정치적 계승<정치적 이계(단군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와 동일 왕계 계승(단군고조선→북부여, 북부여→동부여, 기자조선→마한, 고구려→백제)>과 지리적 계승(위만조선→한사군→이부→삼한→삼국, 북부여→졸본부여) 그리고 기층집단의 유입에 따른 인적 계승(위만조선→이부, 낙랑국·북대방→신라)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계승 관계 속에서 주목되는 찬자의 상고사 인식을 보면, 우선 (단군)고조선에서부터 삼한을 지나 삼국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나라로 연결되는 일관된 계승관계나 역사적 정통성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적 시조로 설정된 단군의 혈연적 계승이 불분명한 까닭이겠지만 정치적 계승자로서 기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중시하였다. 이후 다양한 경로와 개작을 통해 기자조선으로부터 삼국에 이르는 계승관계를 주장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인위적인 개작이 일어나며, 세부 내용에 오류(기준의 남하→마한의 등장, 한사군→이부→삼한 78국, 삼한→삼국)가 발생했지만, 이는 당대 지식인의 사적 인식에서 유래했던 까닭에 큰 결함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일연은 한국사에 포함되나 이전 사서에서 소외되었던 여러 정치체에 대해 뚜렷한 귀속 의식을 가지고 이를 정리해 민족사의 범위를 확장했다. 동시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각 정치체들의 상호 관계를 구체화하여 상고기부터 고대에 이르는 민족사의 계승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Abstract
『三國遺事』で金富軾の『三國史記』を本史と摘記して、‘遺事’を書名として採用したのは『三國史記』に 漏落された三國史を敍述するという意志の表明である。これに首篇とも言える紀異扁の自敍で、神異事を 記錄しようとする方針を闡明した。しかし、『三國遺事』では初めから書名で主唱した‘三國’の範圍を外れて三國と共存し、以前時代のいろいろな政治體について獨立傳を設定して神異社と関係のない內容を多數記述した。これは本書の撰者である一然が、上古時代の政治體が三國と相關性があることに注目して相互關係を具體化しようとしたことで、その過程で‘二府’·‘七十二國’などが前例なしに獨立傳に設定され、意圖的な改作も存在した。その過程で設定された各政治體の間の繼承關係は政治的繼承<異系(檀君朝鮮→箕子朝鮮→衛滿朝鮮)と、同一王系(檀君朝鮮→北夫餘、北夫餘→東夫餘、箕子朝鮮→馬韓、高句麗→百濟)>と、地理的繼承(衛滿朝鮮→漢四郡→二部→三韓→三國、北夫餘→卒本夫餘)、そして基層集團の流入による人的繼承(衛滿朝鮮→二部、樂浪國·北帶方→新羅)に區分される。このような繼承關係で注目される撰者の上古史についての認識には、まず(檀君)朝鮮から三韓を経て三國にいたるまで一國につながる一貫した繼承關係か歷史的正統性が不在する。また民族的始祖として設定された檀君の血緣的繼承が不分明な理由からであるが、政治的繼承者として箕子の存在を肯定した。以後、多様な經路と改作を通して箕子朝鮮から三國にいたる繼承關係を主張した。ただ、その過程で一部人爲的な改作(箕準の南下→馬韓の登場、漢四郡→二部→三韓 七十八國)と誤謬(三韓→三國)が發生したが、これは當代の知識人の通念から起因したので大きな缺陷になるとはいえない。むしろ一然は韓國史には含まれるが、以前史書から疏外させたいろいろな政治體について明らかな歸屬意識をもち、これを整理して民族史の範圍を擴張した。同時に多くの經路を通して各政治體らの相互關係を具體化して上古期から三國にいたる民族史の繼承を明確にしようとした試圖自體は高く平價される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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