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근대 - 초기 한국 피아노음악의 사회사
Piano and the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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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연구자는 근대 피아노문화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시기 피아노는 한국 근대음악의 표상으로 등장했고, 피아노음악은 문명화된 신문화로 뿌리내렸다. 피아노는 1910년 경 근대식 학교를 통해 등장했는데, 초기 피아니스트로는 김영환 ․ 박경호 ․ 정애식 ․ 김메리 ․ 김원복 ․ 이애내 ․ 김영의 등이 존재했다. 이들은 주로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 및 근대식 학교를 통해 음악 입문 및 수학을 이루었고, 그 후에 본격적인 피아노 수학을 위해서 일본과 미국, 나아가 독일 유학을 감행했다. 이 시기 피아니스트들의 음악활동으로는 연주와 반주가 지배적이었다. 박경호 ․ 김영의 등이 독주회를 연 바 없지 않으나, 선교 ․ 음악 보급 ․ 단체 후원 ․ 기념 등의 다양한 목적을 위해서 옴니버스식의 연주회가 즐겨 이루어졌다. 또한 피아노는 성악 및 기악 연주회의 반주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이 시기 피아노가 독주악기로서 보다 반주악기로서의 기능이 훨씬 더 우세했던 것을 반영한다. 피아노 독주를 위한 레퍼토리는 주로 서양의 고전 ․ 낭만시기에 한정되었다. 모차르트 ․ 베토벤 ․ 멘델스존 ․ 슈만 ․ 쇼팽 ․ 브람스 등의 작곡가들의 곡들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낭만적인 음악은 각종 콩쿠르의 지정곡으로 제시됨으로써 레퍼토리의 표준화를 강화시켰다. 낭만적인 음악은 물론, 낭만주의 미학관을 수용한 당대 피아니스트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다. 그러한 문명국에 대한 그들의 환상과 인식은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가졌던 오리엔탈리즘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근대시기는 문명적인 것, 곧 ‘깨끗하고 순수함’이 음악에서 순수음악주의를 낳았다. 김영환 ․ 김메리 ․ 김애리시 ․ 윤기성 ․ 박경호 등 많은 피아니스트들은 유행가나 재즈의 도덕 ․ 윤리적 저급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음악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현실 앞에서는 둔감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odern piano culture in Korea from the historical perspective. The piano had emerged as a symbol of modern music and the piano music rooted as a civilized new culture in Korea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The piano was brought in through the modernized school around 1910 and the following pianists were representative of the pianist in the early stage: Young-Hwan Kim, Kyung-Ho Park, Ae-Sik Jung, Mery Kim, Won-Bok Kim, Ae-Nae Lee, and Yung-Eui Kim. The pianists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in Korea mostly encountered and learned the Western music through the churches and modernized schools built by missionaries. For a full-fledged study, they took decisive actions to go abroad to Japan, America, and even to Germany. The dominant musical activities of the pianist in this era were performing as a soloist and playing as an accompanist. Even though some pianists such as Kyung-Ho Park and Young-Eui Kim performed piano solo recitals, omnibus style concerts were much more popular; there were lots of omnibus style concerts for various purposes such as missionary, music distribution, group sponsor, and commemoration. In addition, many pianists had appeared as an accompanist for the vocal and instrumental concert in many occasions. It reflects the fact that the piano in this era functioned much more as an accompanying instrument than as a solo instrument. Solo piano repertoires in this era were limited in the Western Classical and Romantic period; such as the music of Mozart, Beethoven, Mendelssohn, Schumann, Chopin and Brahms. These composers’ romantic music intensified the standardization of the repertoire by being presented as an assigned piece for various competitions. Pianists in this era, who embraced the romantic aesthetic as well as the romantic music, dreamed of an ideal world despite the reality of a colonial Chosun. Their illusion and recognition over a civilization has some kind of relationship to Orientalism, which the early Western missionaries had. In addition, the civilization of the modernity, “being clean and pure”, caused an attention to a “Pure Music” in the music. Many pianists including Young-Hwan Kim, Mery Kim, Ae-Lee-Si Kim, Ki-Sung Yun and Kyung-Ho Park raised a question over the low morality and ethicality of the popular songs and jazz music. However, their “Pure Music” was insensitive to the historical reality of the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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