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 시기 서양음악의 수용과 그 정치적 의미
The Reception of Western Music and its Political Meaning in the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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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식민지 시기 한국사회에서 서양음악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연구를 시작하는 근본적 질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세기 초반 여전히 전통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양음악이 이 오랜 ‘터줏대감’ 전통음악을 몰아내고 대신 주인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다른 하나는 식민지 통치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이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첫째, 서양음악이 20세기 초반 한반도에서 수용된 배경과 의미를 당시 잡지, 신문, 소설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를 크게 6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둘째, 이 시기는 일본 식민지라는 큰 정치적 테두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서양음악의 수용이 식민지라는 전제 조건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어떤 정치적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논의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결국 음악과 사회 정치의 관계를 밝히는 결과가 되리라 기대된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eception of Western music in colonial Korea and modernity. In this essay I ask firstly how in such a short time, only within about 50 years, Western music could banish almost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which had been continued more than one thousand years. In order to answer this question I conducted to find out which meanings Western music had at that time in the Korean society, and I assumed various functions of it, for example Western music as “enrich the country and strengthen the army(富國强兵)” ideology or as a symbol of civilization and modern life, in a word: Western music may have played a role as a place to imagine the modernity. While the Japanese, who also imported Western music to their country, had reached a higher level of the concert culture than the Korean, Western music could contribute - a thesis of this essay - to realize “the Japanese and Korean as one body(內鮮一體)” ideology. It might have been easier for the Korean upper class or intellectuals and musicians, embracing fascination and envy, to identify themselves with the Japanese and their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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