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음악을 써내려가다: 식민지조선의 음악비평 역할
Writing music of the era: a study on the role of music criticism in the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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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음악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기에, 음악의 비평사(批評史)를 밝히는 일은 음악 작품뿐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를 음악을 통해 이해할 수있게 해 준다. 특히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조선의 음악은 당시에 처한시대적 상황만큼이나 다양한 면모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어 음악비평 연구가더욱 중요하다. 1900년대 초까지 조선에서 의미하는 일반적인 음악이란 풍악이나 연예의 일종으로, 대중과 함께 즐기는 유희의 한 형태였다. 그러나 100여 년 전부터 서구문화와 함께 양악(洋樂)이 우리 문화에 흡수되며 음악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시작하였다.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소개하는 양악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서구의예술 문화임을 강조하며 음악의 지위를 여흥에서 예술로 격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식민지조선의 음악문화를 양악 중심으로 변화시켰고, 그 결과 서양음악은 주입식 읽는 음악을 통해 교양음악이 되었으며, 조선음악의 지위는 하락하였다. 지식인들은 ‘음악비평가’라는 직함을 달고 대중들의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던문자 매체에 글을 실어 이국(異國)의 음악과 유명 작곡가들의 명작(名作)들을 접하게 해주었다. 추체험(追體驗)한 대중들은 그렇게 서양음악을 상상했고 간간이삽화의 도움을 받아 양악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도 고정화되었다. 이처럼 음악비평은 비평의 역할뿐 아니라 음악문화 형성에도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이 연구를 통해 당시 식민지라는 환경에서 전개된 양악 발전이 현재 서양음악중심의 우리 음악문화도 이해할 수 있기에 양악이 자리 잡는 초기 비평 연구는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Abstract
Given music reflects reality of an era, revealing the history of music criticism enables us to understand not only musical works but also their sociocultural contexts. It is especially important to investigate music criticism of the Colonial Chosun because it implies various aspects of social, political, cultural and educational situations under the Japanese rule. Until early 1900s, music was generally considered as a part of entertainment in Chosun. In other words, music was a sort of amusement. After all, western music and culture have been absorbed for about 100 years, which further has changed a perception of music in Korea. Intellectuals introduced western music as a part of western arts and culture that Koreans ought to follow, which has moved a status of music from an entertainment to an art. As a result, Western music, especially literate music learning by rote, became a class of culture whereas Chosun music was degraded. With a title of music critics, intellectuals published their writings on exotic music and famous music by great composers to newspapers and magazines that had strong influence on modernization of the public. Following intellectuals experience, people imagined western music and established their stereotypes of western music with few visual illustrations. It shows that music criticism is responsible not only for critique but also for an establishment of music culture. This study will contributes to better understanding on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reception in the context of the colonial era, which further explains how current music culture in Korea is centered on Western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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