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錦舲 朴永輔와 蘇東坡

Keum-Ryeong's literary insight in the 19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는 錦舲 朴永輔(1808~1872)를 소개함과 동시에 그의 문예의식을 살펴 19세기 문단에서의 위상을 정립 하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금령은 1840년 광릉참봉에 제수된 이래 몰년까지 이조참의․경연관․홍문관제학․공조판서․사헌부 대사헌 등 주요 관직에 머물렀던 문신이다. 그가 남긴 문집은 시집이 36책 41권으로 그 시는 3200 여 수가 넘고, 이밖에도 다양하고 방대한 양의 문집을 남기고 있다. 또한 당대 유력한 문사인 자하 신위에게 수학하고, 추사그룹, 다산그룹과 초의에 이르기까지 교유하였으며, 이유원 등과 교분을 쌓고 詩會를 형성하는 등 문단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 중에서 추사․자하와의 교유는 그를 동파열풍의 중심에 있도록 하였다. 옹방강에게서 시작된 동파 숭앙은 그와 묵연을 맺은 추사와 자하에게 전파되어 그들 그룹을 중심으로 조선 문단에 유행하였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 행위로 동파상의 소장이나 동파의 생일을 맞아 祭를 올리는 등으로 행해져 이전 시기의 동파 숭앙과는 차별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금령은 동파열의 중심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학문관을 설정하는데 적극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인물들과 차별된다. 금령은 19세기 문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동파상 소장․동파제 참여 등의 문화적 활동을 통해 동파 숭앙을 실천함은 물론이고, 학시론에 있어 ‘由蘇入杜論’을 기치로 삼는 등 동파를 학문의 모범으로 설정했다. 특히 그는 문집의 제목마저 동파를 닮아가려는 의미에서 『綠筠集』으로 命名하였으며, ‘由蘇入杜’ 네 글자의 인장을 찍어두고 학문의 징표로 삼아 그 존숭하는 바를 뚜렷이 했다. 금령은 다양한 문학적 관심사와 방대한 저작, 그리고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논의로 금령의 방대한 저작과 다양한 인물과의 교류가 밝혀짐으로써 금령이 19세기 문인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인물이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당대 유행한 소위 동파 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동파의 재능과 기질에 대한 절대경모를 보여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was written to clarify Keum-Ryeong's status in the nineteenth century Korean literature through investigation of Keum- Ryeong's literary works and "Su Dong-po(蘇東坡:1036~1101) syndrome" at that time. Keum-Ryeong(錦舲 朴永輔:1808~1872) had served as a civil official since 1840. His prominence was not limited to the governmental post, but reached to the literary works. Amount of his literary collection is up to 41 volumes including over 3,200 poems besides his various essays and short stories. Keum-Ryeong learned his rhetoric skills by Ja-Ha(紫霞:1769~1847) who was at the center of literature at that era. Also, Keum-Ryeong associated with Da-San(茶山:1762~1836) and Cho-ui(草衣), and he organized a poetry club with Lee-yuwon(李裕元). Especially, association with Chu-Sa(秋史:1786~1856) and Ja-ha made him to be at the core of so-called "Dong-po(蘇東坡:1036~1101) syndrome." The adoration of Su's works was triggered by Weng Feng -gang(翁方綱), and it was naturally shared with Chu-sa and Ja-ha. The admiration even grew into cultural movement such as possession of Su's statue and a memorial service of him. Keum-Ryeong enthusiastically accepted and developed "Dong-po Syndrome" in the 19th century Chosun dynasty. Most notable point is that Keum-Ryeong went one step further by emphasizing academic aspect of the movement. He even named one of his works 'Nokgyunjip(綠筠集)' to show his yearning toward Su Dong-po. Furthermore, he made a seal inscribed 'Yousoipdu(由蘇入杜)' to keep Su's thought in mind. Despite his various literary works and cultural insights, Keum-Ryeong did not attract much academic recognition compared to others. This study asserts that Keum-Ryeong not only was an important figure but also played a leading role of literature and art of the 19th century. Particularly, he was highly receptive toward the epidemic fever of Su Dong-po's works in addition to his absolute dedication for Su's literary talent and style.

참고문헌 (20)

  1. 김정희, "국역 완당집", 민족문화추진회, ~ (1986)
  2. 朴鳳彬, "先考工曹判書府君家狀", 후손가, ~
  3. 朴永輔, "雅經堂詩初集", 후손가, ~
  4. 朴永輔, "雅經堂詩盛集", 후손가, ~
  5. 朴永輔, "雅經堂詩中集", 후손가, ~
  6. 朴永輔, "衍總錄", 후손가, ~
  7. 朴永輔, "綠筠集", 후손가, ~
  8. 朴永輔, "綠帆詩話", 이화여대, ~
  9. 申緯, "警修堂全藁", 한국문집총간, 291, 민족문화추진회
  10. 安炳周, "譯註 莊子", 전통문화연구회, ~ (2003)
  11. 李裕元, "林下筆記", 민족문화추진회, ~ (1999)
  12. 김영진,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일고一考", 다산학, (12), pp.81~118 (2008),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13. 남영진, "19세기 시학상의 由陸入杜와 由蘇入杜論", 한국한문학연구, (43), pp.393~427 (2009), 한국한문학회
  14. 박동춘, "錦舲 朴永輔의 「南茶幷序」 硏究", 한국불교학, (54), pp.85~122 (2009), 한국불교학회
  15. 송용준, "송시사" (2004), 역락
  16. 신지원, "당호를 통해서 본 19세기초 소동파 관련 서화 소장 문화와 대청 문화 교류", 한국문화, (45), pp.75~96 (2009),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7. 안대회, "녹범시화 in: 고서해제" (2008), 평민사
  18. 일석 이희승 전집 간행위원회, "일석 이희승 전집" (2007), 서울대학교 출판부
  19.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몽하편", 정민[URL]
  20. 벤저민 엘먼,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예문서원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