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세기 암태도 주민들의 제언축조와 경제생활-益今里 廣頭堰 사례를 중심으로-
Building Seawalls and Economic Life of the Residents in Amtaedo from the 19th to the 20th Century : Focusing on the Case of Gwangduun, Ikgeu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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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0세기 전라도 나주목 암태도의 간척지 조성과 운영에 관한 사례연구이다. 분석 자료는 암태도 익금리 廣頭堰의 『堤堰文記』이다.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서남해역 섬에서 토지간척이 이루어졌다.”라는 기록이 다양하게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도서지역 주민들이 언제 어디에서 간척지를 조성하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많지 않다. 본 연구는 암태도 익금리 주민들이 직접 작성한 마을문서를 분석하여 간척지 운영 실태를 재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조선시대 서남해역 섬 주민들이 토지를 간척하였다. 그들은 바닷가에 둑을 쌓아 밀려오는 바닷물을 차단하였다. 이것을 ‘堤堰․堤防․防潮堤’라 부른다. 제방 안쪽에 새로 만든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이 농지는 ‘제언을 쌓아서 만든 경작지’라는 의미에서 ‘堰畓’이라 불렀다. 또 언답을 경작하는 사람을 ‘作人’이라 하였다. 작인은 한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堤防을 관리하였다. 그들은 제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契를 조직하였다. 이것이 ‘堰契’이다. 언계는 거주지에 상관없이 제방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19-20세기 암태도 광두언의 간척지에서 농지와 염전을 경영했던 사람들은 오늘날 암태도 주민들의 직계 先祖였다. 그들은 입도 후 포구와 문전옥답 부근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으며, 점차 섬에서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농지를 확장하는데 주력하였다. 처음 바닷가에 쌓은 제방은 ‘舊堰’이라 하고, 구언 너머에 새로 쌓은 제방은 ‘新堰’이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언과 신언의 크기만큼 간척지도 증대되었다. 20세기 익금리 바닷가에 광두언이 건설되면서 대단위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섬마을의 간척지는 주민들의 생업기반을 半農半漁의 경제생활로 변화시켰다.
Abstract
This is a case study on how the reclaimed land was built and operated in Amtaedo(巖泰島), Najumok(羅州牧) from the 19th to 20th century. The material for analysis is Jeunmunki(堤堰文記) of Gwangduun(廣頭堰), Ikgeumli(益今里), Amtaedo. The existing studies have confirmed the fact from a variety of records that land of the island district in the southwest sea was reclaimed in the Chosun Dynasty, but there are only a few case study on when and where the islanders built seawalls and reclaimed land. It is of historical interest that this study analysed Yonghaki(用下記) written by the residents themselves of Ikgeumli, Amtedo and reconstructed Gwangduun. Land of the islands district in the southwest sea was reclaimed in the Chosun Dynasty. The islanders built seawalls to block the surging sea. Those have been called ‘jeun(堤堰), jebang(堤防), bangjoje(防潮堤)’. Reclaimed land was built inside of the seawall. The land was called ‘undap(堰畓)’ which meant the arable land built by constructing seawalls. It is ‘jakin(作人)’ who cultivated the undap. Jakins, farmers, supervised the seawalls first before starting farming. They organized fraternities to manage the seawalls efficiently. That was called ‘unkye(堰契)’. The structure of unkye was based not on a village as a unit but on topographical features. This is because people who shared the seawalls joined unkye regardless of their residence. From the 19th to the 20th century, those who cultivated reclaimed land in Gwangduun, Amtaedo and residents who ran saltern were settlers from cities, whose direct descendants are the islanders now. They settled near ports and rich paddyfields in front of gates in early period. They piled up banks in mud flats gradually to secure farmland. The banks built in early period were called kuun(舊堰). New seawalls were called sinun(新堰). In this manner, the islanders piled up banks and enlarged the farmland gradually. As a result of that, large-scale reclaimed land in island-villages was built in the 20th century. The spatial changes of islands turned residents’ occupation into farming and fishing life as economical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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