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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代 三國의 始祖觀 成立과 變遷

古代三國の始祖觀の成立と変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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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삼국 시대 각국이 지닌 시조관은 다양하고 때에 따라 새로운 인물로 대치되기도 하였다. 곧 고구려 시조 朱蒙은 건국시조로서의 위상을 멸망기까지 꾸준히 유지했지만, 백제 시조 溫祚 그리고 신라 시조 赫居世 등은 시대 변천에 따라 시조로서의 사적 위상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는 시조 주몽이 지닌 종교적 권위의 완성도(天神과 水神의 결합)가 높았다. 더욱이 시조관이 확립된 소수림왕대의 고구려는 중국의 天下觀과 구별되는 자국 중심적인 고유의 천하관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고등종교인 불교나 유교 등이 도입되었지만 기존의 시조관에 영향을 줄 만한 새로운 시조 관념이나 제사 체계의 수용은 없었다. 그러므로 주몽이 지닌 시조로서의 사적 위상과 종교적 권위는 멸망기까지 확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백제는 시조와 건국자가 兩立되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 정사로서 唐代 편찬된『周書』에는 始國者로 仇台가, 『隋書』에는 ‘先’으로 東明과 시국자로서 구태를 구분하여 기술했다. 『삼국사기』에도 백제 건국의 주인공인 온조를 시조라 명기하였지만, 동시에 온조가 즉위 원년 범부여족의 시조 동명을 모신 東明王廟를 건립했음과 역대 왕들이 이에 拜謁한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런데 중국 기록에는 건국자가 구태로 기록되어 국내 기록과 달라 논란이 많다. 이는 백제 왕실이 실질적으로 인정한 건국자는 온조였지만, 사비시대에 이르러 중국적인 예제의 도입 속에 시조관(太祖觀의 도입)의 변화와 더불어 일시적으로 구태가 새로운 시국자로 설정되었던 결과이다. 신라는 박씨 집단의 시조인 혁거세를 건국시조로 삼아 그를 모신 始祖廟를 설치하고 치제하였다. 그러나 이후 김씨 집단이 왕권을 확립하고, 김씨 시조 閼智를 모신 神宮을 설치하여 기존 혁거세와 시조묘의 위상을 대치시켰다. 더 나아가 중대 초에는 중국적 예제의 도입 속에 새로운 ‘先’이자 태조로 星漢을 추존하였고, 중대 말에는 성한을 대신하여 金姓으로써 始登之王한 味鄒王을 시조로 삼아 오묘의 수위에 배례했다. 이 과정에서 혁거세가 지닌 건국시조의 근본적인 위상이 상실되지 않았지만, 신라는 김씨 왕권의 확립과 국가 제례의 변천 및 중국적 예제의 도입 그리고 이에 따른 새로운 시조관의 출현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결과 알지와 성한 그리고 미추왕 등이 혁거세를 대치하는 시조이자 국가 제례의 주 대상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시조의 다양화가 존재했다.

Abstract

三國時代に各國が持っていた始祖觀は多様で, 時によっては新しい人物に代置されることもあった. 即ち、高句麗の始祖の朱蒙は建國始祖としての位相を滅亡期まで維持したが, 百濟の始祖の溫祚, そして新羅の始祖の赫居世などは時代の變遷によって始祖としての史的位相に變化があったのである. 高句麗は, 始祖の朱蒙が持っていた宗敎的權威の完成度(天神と水神との結合)が高かった. なお、始祖觀が確立された小獸林王代の高句麗は中國の天下觀とは区別される自國中心的な固有の天下觀を持っていただけではなく, 高等宗敎である佛敎や儒敎などが導入されたが, 旣存の始祖觀に影響を与える新しい始祖觀念や祭祀體系の受容などはなかった. それゆえに朱蒙が持っていた始祖としての史的位相と宗敎的權威は滅亡期まで確固に維持されることができた. 百濟は, 始祖と建國者が兩立したことが注目される. 中國の正史として唐代に編纂された 『周書』 には始國者として仇台が記述されているが, 『隋書』には‘先’としての東明と始國者としての仇台を區分して記述している. 『三國史記』にも百濟建國の主人公である溫祚を始祖と明記しているが, 同時に溫祚が卽位元年, 凡夫餘族の始祖の東明を祭る東明王廟を建立したことと歷代の王らがここに拝礼した記事が載っている. ところが, 中國の記錄には仇台が建國者として記錄されていて韓国內の記錄と違って論難が多い. これは百濟の王室が本來認定した建國者は溫祚であったが, 泗沘時代に至って中國的な礼儀の導入で始祖觀の變化(太祖觀の導入)と共に一時的に仇台が新しい始國者として設定された結果である. 新羅は朴氏集團の始祖である赫居世を建國始祖として祭る始祖廟を設置して祭った. しかし以後金氏集團が王權を確立して, 金氏始祖の閼智を祭る神宮を設置して旣存の赫居世と始祖廟の位相を代置させた. なお中代初期には中國的礼儀の導入で, 新しい‘先’であるし太祖でもある星漢を推尊して, 中代末期には星漢を代置して金姓として始登之王した味鄒王を始祖にして五廟に首位に拜禮した. このような過程で赫居世が持っていた建國始祖の根本的位相を喪失したのではないが, 新羅は金氏王權の確立と國家の祭禮の變遷及び中國的礼儀の導入, そしてこれによる新しい始祖觀の出現など多くの變化があった. その結果閼智と星漢, そして味鄒王等が赫居世を代置する始祖である同時に國家の祭禮の主な對象として存在する始祖の多樣化があ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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