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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고문서에 등장한 喪不着 표기의 기록문화적 의의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ignificance of Sangbulchak Appearing in the Old Documents of Late Joseon Dynasty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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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문헌정보학

초록

조선시대에 작성된 각종 매매명문 및 분재기 등에 나타난 喪人의 署名 양상을 분석해 본 결과 조선전기로부터 17세기까지는 상중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문서에 자신의 서명을 정상적으로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서명 대신 ‘喪不着’ 등의 문구를 사용한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전반적으로 ‘상불착’과 같이 상중이기 때문에 서명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로 서명을 대체하였다. 이와 같은 喪人들의 서명 기재 방식의 변화는 조선 사회의 유교화 측면에서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개국했지만, 조선 사회에서 주자학적 가치관과 의례가 공고히 고착된 시점은 17∼18세기를 지나면서였다. 18세기 조선의 고문서에 등장한 ‘상불착’과 같은 기록 현상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주자학적 禮 의식이 고착되어 간 면모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이다.

Abstract

An analysis of the signatures of those who are in mourning written into various transaction contracts or property inheritance documents from the Joseon Dynasty era shows that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era until the 17th century, those in mourning gave their signature on documents the same way they would if they had not been in mourning. But starting in the 18th century, there have been cases where the expression ‘Sangbulchak (喪不着)’ was used in lieu of a signature. This was later replaced in the 19th century by a phrase stating that one could not give a signature as he is in mourning. Such changes in the way people in mourning gave their signature can be traced back to Confucian transformation taking place in Joseon society. While Confucian values were adopted as the founding philosophy of governance in Joseon, it was only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that the value system based on Jujahak and associated customs firmly took root. Phrases such as Sangbulchak being recorded in the old documents of Joseon from the 18th century are good examples that show how Confucian values were firmly incorporated into the daily customs in late Jose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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