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과시 출신 생원‧진사의 연원과 의의
Passers of Scholarly Degrees(SaengWon, JinSa)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 in late Chose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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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태학과시에서 대과(문과) 뿐만 아니라 소과(생원·진사시) 관련 은사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종래에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그 연원과 과정을 밝히고 제도적 추이를 조사·분석하여, 조선후기 태학과시와 생원·진사시의 의의를 헤아리는 데 일조하고자 이 연구는 시도되었다. 1648년(인조26) 7월 시행된 태학과시 대륜차에서 최초로 소과은사(직부생진회시)가 주어진 이후, 효종·현종·숙종조에 각각 한 차례씩 시행된 태학과시 대륜차에서도 동일한 소과은사가 있었다. 이후 정조대에는 1790년(정조14) 칠석제에서 ‘직부생진회시’뿐만 아니라 소과입격을 확정하는 ‘직부진사방’의 은사까지 주어졌는데, 이는 정원외 생원‧진사 선발 및 선발인원 증가에 단초가 되었다. 정조대에 소과은사가 주어진 태학과시가 10차례 있었으며, 최소 34명의 생원·진사가 태학과시를 통해 배출되었다. 이후 순조·헌종·철종조에도 태학과시 출신 생원·진사가 있었는데, 한성초시 파방이나 입격자 발거(합격취소)라는 비상한 사태를 처리하기 위해 태학과시(대륜차)로 소과초시 입격자를 선정하기도 했지만, 정례 태학과시인 삼일제·칠석제·구일제·관학유생응제 등에서도 소과은사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고종대에는 1870년 이후 도기(到記) 유생 과시 이외에는 대부분의 태학과시에서 소과은사가 주어졌다. 즉, 헌종·철종조를 거치면서 국가적인 경사를 맞아서 소과은사까지 포괄하는 태학과시를 치르는 경우가 등장하다가, 고종대에 상당수의 태학과시가 대과뿐만 아니라 소과에 대한 은사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종전에 알지 못하고 있던 이런 현상을 접하고, 연구자가 던진 질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 태학과시가 문관고시뿐만 아니라 생원·진사를 선발하는 국가공인 학위고시의 통로도 겸하게 된 셈인가? 둘째, 생원·진사시가 학위고시뿐만 아니라 문관고시도 겸하는 시험으로 변모한 것인가? 우선, 첫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대답하게 된다. 태학과시를 통해서 ‘소과초시면제’ 정도가 아니라 소과입격을 확정하는 ‘생진방말’의 은사까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 질문에 대해서는 추가로 ‘고종대 태학과시 출신 생원·진사’ 연구를 면밀히 진행하고 난 다음이라야 그 여부를 타당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정조대에, ‘문과급제자든, 생원·진사든, 아무런 타이틀 없이 그냥 유학(幼學)이든, 명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도적으로 천명한 이후, 헌종·고종대에도 그 추세가 계속 이어졌고 구체적인 관련 규정까지 발견할 수 있지만, 고종대의 태학과시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며 후속연구를 기약한다.
Abstract
There was considerable number of Passers of Scholarly Degrees (SaengWon生員, JinSa進士)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太學課試) in late Chosen Dynasty. This study is an investigation into the beginning of this system and its historical meaning. In July 1648, there was the first direct advance to final contest for SaengWon·JinSa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 And then there was 9 Passers of Scholarly Degree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直赴進士) in 1790. At last, in the reign of GoJong(高宗), so many SaengWon·JinSa were produced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 In doing this study, I can see the changed social value of the title of SaengWon·JinSa, i.e. it had the meaning of officially approved candidate for public services as well as scholarly degree. It needs to be made positive demonstration for the meaning of the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 and concrete case of public officers who had just the title of SaengWon·JinSa. I will make a supplementary study on Passers of Scholarly Degrees(SaengWon, JinSa) via Literary Test of Grand School in the reign of G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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