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직전 조선 수군의 폐지 문제에 대한 재검토
Reexamination of the issue of the abolition of the Joseon navy before the Battle of Myeong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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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정의 수군 폐지 명령에 반대하여 ‘지금 신에게 전선이 아직 12척이 있사오니(今臣戰船尙有十二)’라는 글을 써서 선조에게 장계로 올렸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글이 적힌 장계가 보성의 열선루에서 작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주장의 근거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반론도 존재한다. 먼저, ‘상유십이(尙有十二)’와 유사한 글이나 수군 폐지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기록들은 대체로 통제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배설로부터 배를 인수한 이후 또는 어란도해전 이후에 조정으로부터 수군 폐지 명령을 받은 것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보성 열선루에서 수군 폐지를 반대하는 ‘상유십이’ 장계를 올렸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와 시기적으로 모순이 된다. 그리고 「난중일기」1597년 8월 15일의 기록을 살펴보면, 선전관 박천봉이 보성 열선루로 가져온 유지의 내용과 이순신이 이에 대하여 회신한 장계의 내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성 열선루에서 ‘상유십이’ 장계를 올렸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상유십이’ 관련 기록과 「난중일기」의 기록을 연결하여 그 유지와 장계의 내용을 임의로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실록」의 8월 5일 기사와 「사대문궤」의 8월 5일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 조정은 해로가 비게 될 것을 염려하여 남아 있는 수군 병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전관 박천봉이 보성 열선루로 가져온 8월 7일자 유지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러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정이 8월 5일의 논의에서 해로가 비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는 결정을 내린 이상 선전관이 가져온 8월 7일자 유지에 수군으로 하여금 육지에서 싸우도록 하는 명령이 실려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선조실록」의 8월 15일과 9월 5일 기사에 따르면, 조정은 전황이 점차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군을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시행된 수군 전략과 명나라 수군의 파병 계획까지 감안하면 조정이 수군 폐지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병조판사를 지낸 이항복이 저술한 “고통제사이공유사”의 경우는 다른 기록들과 달리 조정이 아닌 경상우수사 배설이 육지에서 싸우자는 말을 했다고 서술하였다는 점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본 논고는 명량해전 직전에 있었던 수군 폐지와 ‘상유십이’에 대해 언급한 여러 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이 문제를 고찰하였다.
Abstract
It is widely known that Yi Sun-sin(李舜臣) submitted a Jang-gae(狀啓), in which he wrote ‘Still there are 12 warships’, in opposition to the government's order to abolish the navy ahead of the Battle of Myeongnyang(鳴梁). And some historians claim that the place where the Jang-gae was written was Yeolseonnu(列仙樓) in Boseong(寶城). However, the research of whether this is true or not is still insufficient and there are even counterarguments. This paper intends to consider this issue by examining the records mentioned on the abolition of the navy and various related historical materials. Historical records mentioning ‘Still there are 12 warships’ or ‘the abolition of the navy’ generally described that Yi Sun-sin was ordered to abolish the navy by the government after he took the warships or after the Battle of Eorando(於蘭島). However this description contradicts the views of scholars who claim that Yi Sun-sin wrote the Jang-gae against the abolition of the navy at Yeolseonnu in Boseong. And there is even a record described that the abolition was mentioned by a general, not by the government. According to the article on August 5th 1597 in 『Annals of King Seonjo(宣朝實錄)』, on that day the government made the decision to make the best use of the remaining navy forces, fearing that the sea route would be empty. Therefore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government's order dated August 7th 1597, which was brought to Boseong(寶城) by a military officer Park Cheon-bong(朴天鳳), was written about the decision of the government. In addition, according to the articles on August 15th and September 5th 1597 in 『Annals of King Seonjo』, the government still sought to utilize the remaining navy forces in the sea, not on land despite the increasingly unfavorable war situation. As far as the naval strategy implemented from the early days of Imjin War(壬辰倭亂) and the troops planned to be dispatched from the Ming Dynasty are considered, there is little possibility that the government ordered the abolition of the n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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