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왕국(燕王國)에서 대연제국(大燕帝國)으로 - 모용선비(慕容鮮卑)의 하북진출(河北進出)과 국가형태의 변화를 중심으로
From the Yan Kingdom to the Great Y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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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연왕국의 근거지 요방으로 인구가 다수 유입되어 심각한 토지부족의 문제를 야기하였고, 관료층의 비대화와 수만에 이르는 유식자로 인해 국가의 재정은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또한 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자연재해가 빈번하게발생하면서 모용선비의 생존을 크게 위협했는데,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그들은 결국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하북으로 남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유목민족에 비해 한문화를 보다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던 모용선비는특히 모용외 때에 이르러 정치·경제 등에서 한화정책을 추진한다. 그래서 그는수차례 후손들에게 하루 빨리 남하하여 중원을 차지하고 그곳의 주인이 되어 중화의 정통을 계승할 것을 분부하였다. 이렇게 모용준은 국내외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영화 6년 2월 후조에 대한 군사정벌을 통해 대대적인 하북진출을 시도한다. 20여 만의 대군을 셋으로 나눠 남정에 나선 그는 같은 해 3월 요방에서 하북으로 통하는 요충지 계성을 함락하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 함락된계성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이 가능했을까? 매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가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사서의 기록 ‘입162 | 동북아역사논총 74호(2021년 12월) 도어계’, 특히 ‘인이도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계성이 수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은 모용준이 거의 매년 용성으로 귀환하여 그곳을 특별히 중시한 사실로도 확인된다. 비록 봉혁이 ‘금이도계, 남림조위’라고 언급하기도 했으나, 이는 전적으로 계성의 함락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나아가 이후 모든 하북을 차지하기 위해 계성에 전초기지를 둔 사실을 수도를 둔 것처럼 얘기하면서 초래되었던 것이다. 한편, 영화 8년 중순에 이르러하북의 정세는 연왕국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는데, 방약·가견 등 한인호강, 그리고 적서·단근 등 호인추수의 귀항이 있었고, 중산·상산·업성 등 하북의요충지가 차례로 점령되었다. 이렇게 하북은 요방을 대체하는 국가통치의 중심지역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모용준이 대연황제에 등극하고 계성으로의 천도를 완수하면서 연왕국은 비로소 대연제국으로 국가형태가바뀌었다. 당시 강남에 우거하고 있던 동진은 그 국력이 북중국에까지 미치지못해 도탄에 빠진 한인들을 구출할 수 없었는데, 이때 모용준은 호·한인들 간의민족모순을 격화시킨 염민을 사로잡아 참하고, 이어서 대연황제로서 한인들을구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덕과 인으로 새로운 왕도의 길을 열어 호·한인들이서로 화합하고 상호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겠노라 다짐한다. 따라서 대연황제를칭한 모용준이 호·한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나아가 중화의 주인으로서화하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수도를 요방의 용성에서 하북의 계성으로 천도하는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모용준의 대연황제 등극과 계성으로의 천도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Murong Jun, based on the combined situation at home and abroad, decided to leave the region of the Liao in February 350. He led two hundred thousand troops to invade the later Zhao kingdom, and soon captured Ji City, then prepared to implement the plan of moving the capital. By the middle of 352, the situation in the northern region of the Yellow River had taken a turn for the better for Murong Xianbei. Murong Jun believed that he could transform the northern region of the Yellow River into the hinterland of the Yan kingdom, so he finally called himself Yan emperor in November 352 and moved the capital from Long City to Ji City in February 353. Therefore, the dynastic form was transformed the Yan kingdom into the great Yan empire. The powerful landlord of Han, had surrendered to the Yan kingdom, recognized that Murong Jun would unify China with justice, and he would save the people in trouble. This makes that Murong Jun has a new understanding of the northern region of the Yellow River, and he has enough firm confidence to govern it effectively. Murong Jun said that he was supported by the people and became emperor, and he finally appeared as a great Yan emperor. So it was reasonable to move his capital to Ji City in the northern region of the Yellow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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