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근세 돗토리번(鳥取藩) 町人의 울릉도 도해

Tottori Domain Merchants' Travel to Ulleungdo in the Tokugawa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는 돗토리번 초닌(町人) 오야(大谷) 가문과 무라카와(村川) 가문의 울릉도 도항실태를 검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문의 유래, 17세기 초 울릉도에 도해하게 된 경위, 막부와의 관계, 돗토리번청과의 관계, 울릉도 산물의 활용, 울릉도 도해가 금지된 이후 두 가문의 행보 등을 규명하였다. 두 가문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무사(武士)로 존재하다 돗토리번 요나고(米子)에 이주, 정착한 내력을 지니며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무사적인 성격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막부 관리 아베 마사유키(阿部正之)의 알선을 통해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항을 허가받아 울릉도 도항권을 독점하게 된다. 그들은 이 권한을 근거로 하여 쇼군 알현을 비롯하여 다양한 특권을 획득했고, 매년 울릉도에 교대로 도항하여 해륙의 산물을 채획했다. 그들은 울릉도의 전복을 쇼군과 막부의 요인들에게 헌상하는 한편 채획한 물품을 나가사키로 가져가 견직물, 虎皮, 砂糖 등과 교환하여 일본 각지를 돌며 판매하기도 했다. 17세기 말 울릉도의 소속을 둘러싸고 조선과 외교문제가 발생하자 막부는 1696년 돗토리번주에게 ‘죽도도해금지’를 명하였다. 오야 가쓰후사(大谷勝房)와 무라카와 마사카쓰(村川正勝)의 대에 이르러 두 가문은 약 70년 동안 향유해 온 울릉도 도항의 권리를 상실하게 되었다. 울릉도 도항을 완전히 중단한 결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돗토리번은 오야씨에게 요나고의 城下에서 어류도매업(魚鳥問屋)에서 수수료를 취득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리고 무라카와씨에게는 소금도매업(鹽問屋)의 수수료 취득권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 모두 울릉도 도항을 재개시키기 위한 운동을 오랫동안 계속했다. 또한 오야씨는 1740년 무렵 가업을 확대시키기 위해 ‘오사카 회미선업’, ‘나가사키 무역‘에의 참가를 막부에 청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오야 가문은 경제적인 부침을 거듭하다가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reviews the travel of the Oya family and the Murakawa family from Tottori Domain to Ulleungdo. In particular, the paper studies the origins of the two families, the background of their travel to Ulleungdo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relationships with the Edo shogunate and the Tottori Domain government, usage of Ulleungdo's local products, and progress after travel to Ulleungdo was banned. The two families, having served as warriors in the Warring States period, moved to and settled in Yonago, and maintained some of their warrior-like characteristics until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Abe Masayuki (阿部正之), an Edo government official who had connection with the two families, helped them to acquire exclusive rights from the Edo government to travel to Ulleungdo. With those rights, the two families enjoyed various privileges: they were allowed to have an audience with the shogun, and they took turns every year to travel to Ulleungdo and gather tremendous amounts of abalone and seafood. They offered abalone to key figures of the Edo government, and took the seafood and abalone to Nagasaki and exchanged them with silk, tiger pelts, and sugar cane to sell across the country. When diplomatic disputes with Joseon concerning sovereignty over Ulleungdo arose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the Edo government ordered the daimyo of Tottori Domain to ban travel to Ulleungdo in 1696. The families lost their rights to travel to Ulleungdo, which they had enjoyed for about seventy years, during the generation of ya Katsufusa (大谷勝房) and Murakawa Masakatsu (村川正勝). In consideration of the two families’ economic loss due to the ban on travel to the island, Tottori Domain granted the ya and the Murakawa with rights to receive fees from fishery wholesalers and salt wholesalers, respectively, in Yonago. Nonetheless, both families continued their efforts to resume travel to Ulleungdo for many years. Around 1740, the ya even petitioned the Edo government to be allowed to participate in the shipping business of Osaka and the Nagasaki trade in order to expand their family business. However, such efforts were in vain. The ya faced the Meiji Restoration after repeated ups and downs in its economic status.

참고문헌 (47)

  1. "고려사"
  2. "고려사절요"
  3. "조선왕조실록"
  4. "権記"
  5. "通航一覽"
  6. "長生竹島記", 국사편찬위원회
  7. "竹島に関する七箇条返答書", 국사편찬위원회
  8. 宗家記錄, "元和六年庚申礒竹島弥左衛門仁左衛門被召捕候時之覺書一冊御狀三通此內入", 국사편찬위원회
  9. 宗家記錄, "元祿六癸酉年竹嶋一件拔書, In 記錄類Ⅱ, 조선관계, R2", 長崎縣對馬歷史民俗資料館
  10. 宗家記錄, "深見弾右衛門古帳之写, In 分類紀事大綱38 所收", 일본국립국회도서관
  11. "竹嶋渡海由來記拔書控, In 村川氏舊記 所收", 도쿄대학 史料編纂所
  12. "延享元年於江戶表奉願上候一件, In 村川氏舊記 所收", 도쿄대학 史料編纂所
  13. "竹島江渡海之次第先規より書府之寫, In 大谷氏舊記 一所收", 도쿄대학 史料編纂所
  14. "江戶御進上覺帳, In 大谷氏舊記 二 所收", 도쿄대학교 史料編纂所
  15. "御公儀江御訴訟之御請幷竹島渡海之次第先規より書附之寫, In 大谷氏舊記 三 所收",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16. "大谷家文書, In 竹嶋渡海由來記拔書", 돗토리현립박물관
  17. 岡島正義, "竹嶋考", 돗토리현립박물관
  18. 岡島正義, "因府歷年大雜集", 돗토리현립박물관
  19. 岡島正義, "因府年表", 돗토리현립박물관
  20. "鳥取藩政史料, In 竹嶋之書附", 돗토리현립박물관
  21. "鳥取藩政史料, In 伯耆民諺記", 돗토리현립박물관
  22. "鳥取藩政史料, In 控帳(家老日記)", 돗토리현립박물관
  23. "鳥取藩政史料, In 御用人日記", 돗토리현립박물관
  24. "鳥取藩政史料, In 小谷伊兵衛より差出候竹嶋之繪圖", 돗토리현립박물관
  25. "鳥取藩政史料, In 竹島之圖", 돗토리리현립박물관
  26. 北澤正誠, "竹島考證上", 일본국립공문서관
  27. 奥原碧雲, "竹島及欝陵島" (1907), 報光社
  28. 辻善之助, "多聞院日記" (1938), 三敎書院
  29. 鈴木棠三, "對州編年略" (1972), 東京堂出版
  30. 大谷文子, "大谷家古文書" (1984), 久保印刷所
  31. 川上健三, "竹島の歴史地理学的研究" (1966), 古今書院
  32. 中村榮孝, "日鮮關係史硏究 下" (1969), 吉川弘文館
  33. 梶村秀樹, "竹島=独島問題と日本国家", 朝鮮研究, 182 (1978)
  34. 內藤正中, "史的檢證 竹島・獨島" (2007), 岩波書店
  35. 内藤正中, "鳥取県の歴史" (1997), 山川出版社
  36. 池內敏, "大君外交と武威" (2006), 名古屋大学出版会
  37. 鳥取県立公文館県史編纂室, "江戸時代の鳥取と朝鮮" (2010), 綜合印刷出版株式会社
  38. 荒木和憲, "中世対馬宗氏領国と朝鮮" (2007), 山川出版社
  39. 米子市史編纂協議會, "新修米子市史 第二卷 通史編近世" (2004), 有限會社米子プリント社
  40. 김호동,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활동의 허와 실", 대구사학, 71, pp.137~156 (2003), 대구사학회
  41. 김호동, "조선 초기 울릉도,독도에 대한 ‘空島政策’ 재검토", 민족문화논총, (32), pp.257~290 (2005), 민족문화연구소
  42. 유미림, "장한상의 울릉도 수토와 수토제의 추이에 관한 고찰",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1(1), pp.147~175 (2009), 한국정치외교사학회
  43. 배재홍, "조선후기 울릉도 수토제 운용의 실상", 대구사학, 103, pp.113~148 (2011), 대구사학회
  44. 송병기,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 (2010), 역사공간
  45. 이계황, "일본인의 울릉도 도해와 조・일 외교교섭", 일본역사연구, (33), pp.73~113 (2011), 일본사학회
  46. 최은석, "안용복 사건의 무대-17세기 돗토리번과 오키국, In 역사와 지리로 본 울릉도・독도" (2011), 동북아역사재단
  47. 윤유숙, "18~19세기 전반 朝日 양국의 울릉도 도해 양상", 동양사학연구, (118), pp.281~321 (2012), 동양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